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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오마이뉴스에 있는 제 영화 칼럼 [강윤주의 판타스틱 플래닛]과 [강윤주의 작은 영화제]에 실린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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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오버하우젠 선언을 꿈꾸며

<판타스틱 플래닛> 50돌 맞은 오버하우젠 단편 영화제를 다녀오다

강윤주 (jedoch)

독일 '오버하우젠 단편영화제'는 프랑스의 '끌레르몽 페랑 단편영화제'와 더불어 세계에서 손꼽히는 단편영화제라고 할 수 있는, 올해로 50살이 된 영화제입니다.

요즘 독일 영화계의 침체에 대해 들어 보셨나요? 자국 영화 시장 점유율이 10퍼센트 대를 밑돌면서 그에 반해 60퍼센트 대를 넘어가고 있는 한국을 무척 부러워하고 있지요.

그래서인지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열린 오버하우젠 단편 영화제에는 - 물론 50주년을 맞은 탓도 있었지만 - 이례적으로 슈뢰더 총리까지 참석했습니다. 아마도 '뉴저먼 시네마'를 있게 한 '오버하우젠 선언'의 열기가 다시 한 번 뜨겁게 일어 독일 영화가 재도약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방문한 것이겠지요.

'오버하우젠 선언'이란 것은 '아버지대의 영화'와 단절하고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독일 영화계와 문화계 사람들의 선언입니다.

이들은 당시 상업적이고 말초적인 영화가 판치던 독일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기 시작했고 결국 '뉴저먼 시네마'라는 한 시대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선언서를 좋아하지 않지만 '오버하우젠 선언'에는 언제나 신선함과 힘찬 기운이 넘쳐 다시 찾아 읽어보게 됩니다. 여러분도 한 번 보실래요?

 

▲ "리히트부르크 팔라스트" 전면
 
ⓒ 해당 저작권자
“청년 작가, 감독, 제작자가 만든 독일 단편 영화가 지난 몇 년간 국제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수상했고, 국제 비평가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이 작품들의 성공은 독일 영화의 미래가 새로운 영화 언어를 구사하는 젊은 작가들의 손에 달려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단편 영화는 극영화를 위한 산실이자 실험실이 되고 있다.

새로운 영화는 새로운 자유를 필요로 한다. 기존 영화 산업의 관행, 상업적인 영향력, 특정한 이해 집단의 통제로부터 자유가 필요하다. 우리는 새로운 독일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지적, 형식적, 경제적인 관념을 구체적으로 갖고 있다. 낡은 영화는 죽었다. 우리는 새로운 영화를 신봉한다.”


1962년 당시 이렇게 씩씩했던 독일 영화계가 현재 처한 상황을 보면 서글플 따름입니다.

자, 어찌됐건 올해 오버하우젠 단편영화제의 특징은 지난 50년간 상영되었던 영화들 중에 특별한 영화들을 선정하여 회고전을 가진 것과 몇 년 전부터 열리기 시작한 '뮤직비디오 섹션'이 더욱 활성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 50년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50년을 내다보는, 매우 실험적인 영화들을 모은 섹션도 준비했더군요.

오버하우젠에 몇 차례 다녀 본 소감으로는, 오버하우젠 단편영화제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은 확실히 실험적 성향이 강하다는 겁니다. 특히 올해로 여섯 번째에 접어드는 뮤직비디오 섹션은 M-TV에서 보기 힘든 문명 비판적이고 정치적인 뮤직비디오들을 보여주고 있지요(뮤직 비디오 섹션을 맡은 프로그래머인 라스 헨릭 가스는 엄청나게 늘어난 음악 방송들이 정작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뮤직 비디오들을 위한 지원에는 등돌리고 있다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 뮤직 비디오 "E-Baby"
 
ⓒ 해당 저작권자
그 중 몇 편의 뮤직비디오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먼저 환경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선택한 '이 베이비(E-Baby)'입니다. 파리를 주 근거지로 활동하는 디지털 예술가 집단인 'Pleix'가 만든 비디오인데, 신용 카드로 자기가 갖고 싶은 아기를 구매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린 사실 매우 끔찍한 내용의 뮤직 비디오입니다.

그러나 이 베이비(E-Baby)라 할지라도 아기는 아기인지라 얼마나 이쁜지 몰라요. 또 '이 베이비(E-Baby)'도 애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해주기라도 하는 듯, 아기가 누워있는 인큐베이터 통 안으로 실체를 알 수 없는 검은 팔 두 개가 들어와 아기를 만져주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묘해지지요.

또 한 편의 뮤직 비디오는 'I am the message'라는 것인데 '그림'이라기보다 '기호'에 가까운 것들을 모아 이야기로 엮었습니다. 거리에서 무심코 보고 지나갔던 기호들이 살아있는 사람이 되어 테크노 음악에 몸을 맡기고, 인간의 일상을 재현하는 걸 보니, 어느 순간 나 역시 이렇게 기호화되어 오로지 도시 속의 한 점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오노 요꼬 뮤직 비디오를 만든 마이크 밀스 (Mike Mills)
 
ⓒ 해당 저작권자
오노 요꼬의 음악으로 만든 'Walking on thin ice'는 오노 요꼬 음악의 느낌을 잘 살려주는 흑백과 실루엣 위주의 뮤직 비디오로, 작은 토끼 한 마리가 마치 낙원과도 같았던 숲에서 납치되었다가 요정의 도움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신비하고도 동화적인 분위기로 흘러가는 뮤직 비디오를 보고 있노라면, 젊은 시절 긴 생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오노 요꼬의 얼굴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50주년을 맞아 이 영화제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떠들썩했지만 독일 영화계의 침체와 더불어 오버하우젠 단편 영화제도 옛 명성을 잃었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같은 호텔에 묵었던 탓에 아침 식사 때마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인터내셔널 경선 부분 프로그래머인 허버트 슈바르쩨 (Herbert Schwarze) 역시 “내년에는 이곳 말고 끌레르 몽페랑으로 가보는 것이 낫겠다”고 권해주더군요. 오버하우젠에 올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단편 영화를 보려면 끌레르몽 페랑은 아무래도 꼭 한 번 가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말이었겠지만 말입니다.

그와 함께 한국 단편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지요. 예선에서 한국 영화들을 많이 보았다는 그의 말에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제에서 상영된 한국 작품은 겨우 한 편이었거든요. 박관호 감독의 <나무아미타불 크리스마스>라는 16분짜리 영화였죠.

허버트 슈바르쩨는 예선에 올라온 작품이 무려 50여 편이 넘었으나 아쉽게도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에, 매끈하기는 하나 실험 정신이 결여된 것이 많았다고 평했습니다. 그에 반해 독일 영화계는 겉으로는 침체돼 있지만, 단편 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런 이들이 다시 독일 영화계의 자양분이 되어 언젠가 '제2의 오버하우젠 선언을 하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디지털 영화, 기회인가 저주인가?" 포럼 참가기  
  다양한 시도를 고민하고 있는 유럽 단편영화인들  
 
 
 
▲ 포럼 발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잉가 폰 슈타덴
 
“디지털 영화: 기회인가 저주인가?”는 '오버하우젠 단편영화제' 기간 동안 열린 포럼 중 하나입니다.

독일 및 유럽 영화계의 쟁쟁한 인사들이 모여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는데, 어찌 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그 화끈한 논쟁 시기가 지났다고 보여지는, 디지털 영화의 미래를 뒤늦게 다루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미국이나 우리 나라 사람들보다 더 오래, 더 천천히 생각하는 유럽인들의 사고를 재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포럼 중 인상적이었던 말들을 몇 가지 소개해 볼까 해요.

디지털 영화의 상영에 대해 발표한 잉가 본 슈타덴 (Inga von Staden)이 이야기한 것 중에 흥미있는 부분은 신용 카드로 영화를 볼 경우, 누가 언제 무엇을 봤는지 그 자체로 통계를 낼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라 놀랄 것도 없지만 '정말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는 순간, 발표자는 제 뒤통수를 또 한 번 치는 발언을 하더군요.

“그러므로 이러한 방식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무엇이든 중앙이 통제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이 순간 갑자기 한국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생각난 것은 우연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정보의 중앙 집중화에 열광하는 한국인의 사고와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럽적 사고 사이에는 분명 역사적 경험 차이가 있겠지요.

김기덕 감독 스타일, 아니면 이재용 감독의 <한 도시 이야기> 스타일로, 3일 동안 모든 배우가 찍은 100여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편집해 영화로 만들었다는 한 노르웨이 제작자는 버터와 마가린을 예로 들어 디지털 영화를 설명하더군요.

“마가린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모두 버터 회사가 망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방이 적고 산뜻한 마가린이 나왔는데 왜 구태여 버터를 먹겠어?' 라며 말이죠. 하지만 봅시다. 버터가 현재 존재하지 않나요? 버터는 버터의 맛을, 마가린은 마가린의 맛을 가지고 승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필름 영화와 디지털 영화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영화 때문에 필름 영화가 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마지막으로 끌레르몽 페랑 단편 영화제에서 시도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소개할까 합니다. 끌레르몽 페랑에서는 예선에 들어온 4000여 편의 영화를 모두 디지털로 복원해 보관했다고 하는군요. 그 중 290여 편의 영화는 데모 형식으로, 곧 1, 2분간 온라인에서 볼 수 있게 공개해 두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작업이죠.

그런데 한술 더 떠 'reelport'라는 회사는 현재 세계에서 제작되는 단편 영화들을 모두 디지털로 복원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단편영화를 배급, 상영하고자 하는 회사나 영화제 관계자들이 지금처럼 감독들에게 직접 영화를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이 회사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작품을 수급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전세계 단편 영화의 활성화라는 면에서 매우 합리적인 일이지만, 이 역시 중앙 집중화라는 면에서는 글쎄요, 어떨지요… .
어찌됐건, 결론적으로 오버하우젠 단편 영화제의 포럼은 매우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이런 시간을 통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됩니다. / 강윤주
 
 
2004-06-10 10:1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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