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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오마이뉴스에 있는 제 영화 칼럼 [강윤주의 판타스틱 플래닛]과 [강윤주의 작은 영화제]에 실린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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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간의 자원 활동을 마치며
<서울 여성 영화제> 막을 내리다
강윤주 기자
 
 
ⓒ2003 wffis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8일간의 자원 활동이 이제 모두 끝났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온 몸이 녹초가 되어 꼼짝할 수 없었기에 영화제 폐막식도 채 다 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태까지 관객으로, 취재 기자로 영화제에 다녀 본 적은 많았지만 자원 활동가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띠고 영화제에 참여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8일이라는 시간을 꼬박 바쳐 자원 활동을 마치고 뒤돌아보니 생각보다 풍성한 수확이 내게 남겨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강조해야 할 점은 영화제 기간 동안 함께 일했던 영화제 스태프들, 자원 활동가들과의 만남이었다. 스태프들은 자원 활동가들처럼 무료 봉사가 아니라 그 노동에 대한 보수를 지급받기는 하지만, 영화제의 빠듯한 예산 탓에 각 개인의 경력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는 못하고, 또 대부분 영화제 기간 동안만 일하는 자원 활동가들과는 달리 훨씬 오랜 기간을 일하는 탓에, 대우면에서 그들과의 거리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또한 스태프과 자원 활동가의 관계는 주종 관계가 아니라 협업의 관계였던 탓에 상명하복적 분위기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빼놓을 수 없는 또하나의 수확은 바바라 토이펠 감독과의 인연이었다. 8일간의 시간을 공유하면서 나는 한 40대 독일 여자 감독을 통해 수년간 독일에 살면서도 알지 못했던 독일의 역사나 그 역사를 온몸으로 뚫고 지나온 한 여성의 정치 의식 등에 대해 다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녀는 수행 통역일과 취재일을 병행해야 하는 내 입장을 잘 이해해 주었고, 그런 탓에 오히려 적절한 거리 두기를 통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듯하다.

영화제 기간 동안 본 많은 새로운 영화들로 인해 얻은 자극 역시 중요한 수확물이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한다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수많은 영화들을 통해 나는 내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어느 위치쯤에 와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었다. <서울 여성 영화제>에는 많은 남자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급진적 페미니즘 영화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스펙트럼을 이야기하자면 이른바 중도 좌파에서 극좌파까지 다양한 색채의 영화들이 있고, 정치적 색채뿐 아니라 형식 실험이라는 면에서도 사람들에게 아주 친근한 형태에서 쇼킹한 것까지 골고루 갖춰져 있다.

 

 
 
ⓒ2003 wffis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영화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는 방식을 연습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대중 공포증 비슷한 것이 있어 바바라 토이펠 감독 영화의 “관객과의 대화”를 통역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잘 할 수 있을지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관객들은 열린 마음으로 앉아있었고 그들은 감독뿐 아니라 사회자, 심지어 통역자의 입장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영화제 관객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반 영화 관객과 다르다. 그들은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붓는 상업 영화의 포격을 뚫고 작은 영화제라는 진지에 들어와 군용 텐트 속에서 아기자기하게 영화 보기를 즐겨하는 용기있는 군사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자신이 방금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음에 용기를 얻는 일은 일생에 흔치 않은 즐거운 경험이다.

또한 이 자리에서는, 우리나라의 교육적, 사회적 풍토 탓에 특히 여성들에게 부족한 점인, 자신의 생각을 대중 앞에서 조리있게 표현해 내는 훈련을 할 수도 있다. 어디 하늘 먼 곳에 앉아 있을 것 같은 감독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며 이를 통해 ‘감독 신비주의’를 깨면 가깝게는 자신의 생각이 그 감독의 다음 번 영화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고, 멀게는 영화 만들기에 대한 거리감을 줄여 수동적 관객으로서가 아닌 적극적 영화 생산자로서의 꿈을 꾸게 될 수도 있다.

이 기사를 끝으로 <서울 여성 영화제> 보고를 마친다. 때로 치기어린 문장을 삽입하기도 했던 내 기사를 재미나게 읽어주신 분들이 있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2003/04/19 오후 1:09
ⓒ 2003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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