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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감독들의 한바탕 국제적 수다 자리
쾌걸 여담 “왜 디지털인가?”
강윤주 기자
▲ 왼쪽부터 야우칭, 남인영 수석 프로그래머, 바바라 토이펠
 
ⓒ2003 wffis

“왜 디지털인가?” 하는 질문이 <서울 여성 영화제>에서 또 한번 제기되었다. 17일 오후 2시에 열린, <베를린의 여걸들>의 독일 감독 바바라 토이펠과 <애정성시>의 홍콩 감독 야우 칭 사이의 토크쑈는 두 사람의 디지털 영화 만들기만이 아니라 관객으로 참석한 감독들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대단히 풍성한 이야기 마당이 되었다.

이 자리에 관객으로 동석한 감독들은 <그녀들만의 것>을 만든 독일의 수잔 오프터링거, <싸구려 블론드>와 <동시대 사례 연구>의 호주 감독 자넷 메리웨더, 그리고 카리비안해의 가우델로프 섬 태생으로 <랑데부>를 만든 마리에뜨 몽삐에르, <왠지 작은 찻잔과 밥그릇>의 이정화씨 등이었다.

다양한 나라의 감독이 모인 탓에 특히 제작 환경 등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각 나라의 상황 등을 비교하는 대화가 오갔으며 관객보다 오히려 감독들이 신이 나서 토론을 이어가는 바람에 사회자인 수석 프로그래머 남인영씨가 중간중간 ‘제지’에 나서, 관객들을 위한 통역을 위한 순간을 잡아주어야 할 지경이었다.

이 날 나온 이야기 중 흥미있는 것들로만 간추려 보자면 먼저 ‘왜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을 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야우칭 감독의 대답부터 시작할 수 있겠다.

흔히들 말하는, 예산과 촬영 시 배우들의 자유를 확보해 내기에 유리하다는 점말고 야우칭 감독은 ‘눈에 띄지 않으니까’라는 이유를 댔는데, 이말인즉슨 홍콩이라는 복잡한 대도시에서 거창한 필름 카메라를 들고 나갔을 경우 행인들이 카메라를 힐끔대며 바라보는 바람에 도저히 자연스러운 장면을 잡아낼 수 없는데, 자신이 쓴 Sony PD 100 같은 경우에는 배우와 스탭을 제외한 일반인들이 카메라가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지금 영화 촬영 중인지도 눈치챌 수가 없어 아무 문제없이 촬영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더라면 틀림없이 정부의 허가를 얻고, 엑스트라를 동원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걸 위한 시간과 돈이 제게는 없었어요.”라는 게 그녀의 솔직한 대답이었다.

남인영씨는 “초저예산으로 찍는 영화들을 우리는 흔히 ‘빈곤의 미학’이라고 표현한다”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는데, 야우칭 감독은 자신이 이 ‘빈곤의 미학’을 오히려 즐긴다고 답했다. 영화를 만들 때 어떤 식으로든 문제에 부딪치고 그게 한계처럼 느껴지면 그에 대응해 새로운 창조적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 이미지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야기가 무르익으면서 두 감독과 관객 중의 감독들 사이에서는 어떤 카메라를 썼느냐에 대한 말들이 오갔다. 야우칭 감독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Sony PD 100 을 썼는데, 영화 촬영 당시인 99년에 캐논 기종도 있었지만 그 기종으로 시작하면 그 뒤로도 계속 캐논 기종을 써야한다는 말에 소니를 손에 들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현상소와의 긴밀한 연계하에 자신의 작품을 위해 어떤 카메라가 좋을지를 결정했다고 한다.

호주의 자넷 메리웨더는 토론 중간에 신선한 문제 제기를 했다. “제가 수퍼 16 미리로 영화를 찍어 35 미리로 전환하려 하자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로 만들지 왜 예산이 많이 드는 방식을 택하느냐? 라고요. 하지만 저는 제 영화에서 필름이 주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봤거든요. 모든 사람에게 디지털 카메라가 만병통치약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 여성 감독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저예산으로 만들기 위해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성 감독들이 남성 감독들에 견주어 제작 지원금이나 배급 지원을 받는 데 있어 뒤지지 않도록 애써야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곧 없는 살림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면서 필름으로 찍어야 하는 영화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지 말고 제도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야우칭 감독은 그러나 수퍼 16 미리를 써 볼 생각이라도 할 수 있는 건 자넷 메리웨더가 상대적으로 영화 제작 여건이 좋은 호주에서 영화를 찍었기 때문이라며 대부분의 아시아 지역에서는 그 카메라를 손에 들어보는 것조차도 힘들다고 말했다. 자신이 35 미리로 찍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애정성시>는 아마 5년 후쯤에나 나올 수 있었을 거라는 게다.

바바라 토이펠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에 덧붙이기를 자신은 디지털 카메라로 찍으면 예산이 절감될 줄 알았는데 나중에 필름으로 현상하고 보니 결국 전체 예산이 처음부터 필름으로 찍었을 경우와 별 다를 바 없는 없다는 것을 알고는 조금 황당했다고 했다. 이 자리에 있던 많은 감독들이 이에 동의했다.

이정화 감독은 혼자서 모든 걸 결정해야 하는 탓에 후반 작업 때는 돈 마련할 생각에 암담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교통 사고를 당해 그때 타게 된 보험금 몇백만원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디지털 카메라로 ‘눈에 안 띄게’ 영화를 찍었을 때 행인들의 초상권 문제 등 다양한 질문이 나왔던 이 시간은 주최측이 의도한 대로 ‘유익한 수다 떨기’의 자리였다. 아쉬운 것은 일반 관객들이 그리 많질 않았다는 점인데 더 많은 홍보를 통해 내년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03/04/18 오전 8:05
ⓒ 2003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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