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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오마이뉴스에 있는 제 영화 칼럼 [강윤주의 판타스틱 플래닛]과 [강윤주의 작은 영화제]에 실린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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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시선이 배제된 즐거운 놀이마당
<서울 여성 영화제> 15일 밤 열린 "아시아 여성 영화인의 밤"
강윤주 기자
▲ "아시아 여성 영화인의 밤"에 참석한 사람들
 
ⓒ2003 wffis

15일 저녁 있었던 '아시아 여성 영화인의 밤'은 그야말로 신나는 놀이 마당이었다. 여성 영화 감독, 영화계 인사, 여성 영화제 1회에서 4회까지 단편 경선 부문 수상자들과 5회 단편 경선 부문 본선 진출 감독, 해외 게스트 등 많은 사람이 모여 먹고 마시며 그 자리를 즐겼다.

영화 <비너스 보이즈>의 주인공 드레드 게레스탄트의 특별 공연은 이 놀이 마당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는데, 참고로 <비너스 보이즈>를 잠깐 소개하자면 한마디로 '드랙 킹'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드랙 킹'이란 남성들의 걸음걸이나 옷 입기, 말하는 태도 등의 모방과 재현을 통해 그들의 성욕과 권력을 풍자하는 공연이다.

'드랙 킹' 배우들은 모두 여자, 혹은 여자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로서 이들은 이런 풍자 공연으로 남성이 되고 싶다는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머리 속에 뿌리박혀 있는 고정된 성적 경계를 허물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남성/여성말고 그 사이에 어떤 다른 성 정체성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이들에게 '드랙 킹' 공연은 하나의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 영화 <비너스 보이즈>의 배우 드레드 게레스탄트. 이날 그는 "드랙 킹" 공연으로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2003 wffis

드레드 게레스탄트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다. 남자의 모습에서 여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의 모습으로 계속해서 변신하는 그는 가발과 구두, 의상 등의 소품을 이용하여 관중들이 보고 있는 무대 위에서 직접 변신을 했는데, 특히 열렬한 박수를 받았던 부분은 그가 남성 성기처럼 보이기 위해 그의 아랫도리 부분에 넣어 놓았던 사과를 꺼내어 먹는 장면이었다.

“성적 구별의 역사는 아담과 이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소리지르는 그를 향해 열광하는 관중들, 그 자리에서 그들이 과연 무엇을 생각했는지, 내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드레드 게레스탄트의 연이은 남성 성기 풍자를 보며 폭발적으로 소리질렀던 여자들 사이에서는 분명, 의식/무의식상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제 파티 자리는 같은 영화계 안에서 일을 하면서도 만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 혹은 동경했으나 막상 말 한 마디 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용기 내어 다가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 날 밤 있게 되는 관객과의 대화 통역을 얼결에 떠맡게 된 나는 갑자기 관객 앞에 서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이 파티를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심리 상태였는데, 우연히 만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내 마음을 열어 보이고는 다소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 일에 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이 사람 저 사람 중의 하나가 아시아 단편 경선 본선 심사위원인 케이 아마타지였다. 그녀는 긴장하고 있다는 나의 말에 “내가 나일 때는 긴장할 필요가 없다”며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사실 이 말은 그녀가 대학 때 연극에서 한번 “저녁 준비됐어요”라는 한 마디를 하는 하녀 역할을 할 뻔했는데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콘텍스트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말은 내게 대단한 위로로 다가왔다.)

나중에 다른 기사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정작 관객과의 대화의 주인공인 바바라 토이펠은 나보다 더 떨고 있었다. “내 마음을 열어보여야 하는데 어떻게 안 떨리겠어?”하며 그 긴장을 잊으려는 듯이 포도주를 거푸 들이키는 그녀를 보며 나는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그런 우리 둘의 마음을 이해했던지 파티장을 나서는 우리에게 집행 위원장 이혜경씨는 맥주 한병씩을 따주며 “극장 가는 길에 마시라”고 했다. (혹 그날의 관객과의 대화에 오신 분 중 우리 둘다 약간 알딸딸한 상태였음을 눈치채신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얘기가 또 옆길로 샜지만, 이 기사는 파티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한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었으므로 어느 정도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여성들이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즐기는 파티는 내게 처음이었는데, 그 분위기는 어딘가 '해방구'적 느낌을 갖게 했다. 파티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는 남자 자원 활동가 다섯명이 왠지 불쌍해 보일 정도로…


2003/04/16 오후 12:04
ⓒ 2003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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