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단편 걸작선 5편 소개
<부산 영화제 삐딱하게 보기>
 
    강윤주(jedoch) 기자
 
▲ 영화 상영 뒤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가지는 감독들
2001 강윤주
 

반갑게도, 한국 단편 영화 섹션에는 자리가 없어 서서 봐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많은 관객이 들었다. 부산 영화제에 초청된 열다섯편의 단편 중 기자가 본 다섯 편의 영화들과,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열린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소개한다.

1. 산성비

해고 통보를 받고 절망적인 심정으로 거리를 헤매던 한 사내가 우연히 원조 교제에 나선 소녀를 만나고 여관에 들어가 성관계를 맺는다. 화대를 지불하려고 지갑을 뒤지던 그는 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곧 돈을 찾아 다시 오겠다는 그의 말을 소녀가 믿을 리 없다. 몰래 카메라를 통해 이들의 정사를 녹화하던 여관 주인이 느닷없이 방에 들어와 그를 패대기치고 그는 주인에게 개 끌리듯 끌려가 돈을 찾아와야 한다.

이 영화를 만든 하연주는 이십 년간 미국에서 생활하다 한국에 온 지 오 년 된 젊은 감독이다. 오 년 동안 서울에 살면서 가진 느낌을 표현해 보려고 했다는데 그 느낌이 원조 교제를 소재로 한 이야기로 그려졌다는 사실이, 계속 서울에서만 살아온 이들에게는 매우 착잡하게 다가올 듯했다.

2. 오르골

줄거리 소개를 하기 힘든 영화. 기괴할 정도로 짙은 눈화장을 한 여자가 통곡 끝에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고 동맥을 끊는다. 그 직후 그녀는 거울을 보는데, 그 거울 뒤에는 건강하고 정상적인 그녀가 서 있다. 정상적인 그녀가 다시금 자살하는 그녀를 보며 안타까워하고…

'자살할 지경으로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거울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화두를 가지고 영화를 찍었다는 감독 김은경은, '눈물 쏙 빠질 정도로 슬픈 호러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게 꿈이라고 한다.

3. 8849m

얼어 죽어가는 동료의 품에서 태극기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든 주인공은 마침내 산 정상에 도달한다. 자랑스럽게 태극기를 휘날리며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기념 사진을 찍으려는 그에게 신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카메라가 넘어지거나 태극기가 날아가거나 하는 온갖 희한한, 관객에게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1200만 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찍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실감나는 장면들을 연출한 감독 고영민은 추운 산의 텐트에서 같이 자며 영화를 찍어준 스탭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명했다.

4. 언젠가

안나는 불쑥 찾아온 남편의 형 마리우스를 통해 자신이 잊고 있었던, 다섯 살 때의 유괴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안나의 기억들이 모자이크식으로 전개되면서 전체 사건을 보여준다.

폴란드 국립 영화 학교의 김희정 감독. “닫힌 공간에 사는 두 사람 – 안나와 그의 남편- 이 외부로부터 온 한 사람을 통해 전달받게 되는 새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5. 승부

두 사람의 권투 선수가 챔피언 타이틀을 두고 격돌하는 이야기이다. 두 사람 각자의 일상을 통해, 두 사람이 결국 맞는 일도, 때리는 일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지만, 또 심지어 사적으로는 선후배하는 친한 사이지만 링 위에서는 각자의 인생을 두고 승부를 겨루어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허종호 감독의 소망은 근사한 멜로물을 만드는 것이라 한다.

장내를 꽉 채웠던 관람 때의 열기만큼은 아니었지만, 반 이상이 넘게 빠져나간 뒤에도 남아서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했던 청중들의 분위기는 매우 진지했고, 질문 또한 관객으로서의 그것만이 아니라, 지금 영화를 제작하고 있거나 장래 영화를 제작하려는 이들이 '동료'로서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부산 영화제에서, 평소 보지 못하는 유명 외국 영화 감독들의 영화를 보는 것도 좋겠지만, 이런 자리를 통해 영화 제작의 '친구들'과 그들의 작품을 만나보는 것도 꽤 권할 만한 일이라 생각된다.
 

  2001/11/11 오후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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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있는 글들은 오마이뉴스에 있는 제 영화 칼럼 [강윤주의 판타스틱 플래닛]과 [강윤주의 작은 영화제]에 실린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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