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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자료를 다른 곳에 사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아주 오래된 개그 하나 꺼내어 다시 얘기하면서 오늘의 영화 소개를 시작할까요? 다름아니라 경상도 남자 개그 말이예요. 집에 들어온 경상도 남자가 하는 말 세마디: "아는?" "밥 묵자!" "고마 자자!" - 이게 처녀들에게 들려주는 버젼이고, 아줌마 버젼은 두 가지가 더 들어간다죠? "...좋나?" "한번 더 하까...?"

피식, 웃음이 나오시죠? 하도 옛날 개그라 황당해서? 그저,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의 소재와 공통적인 요소를 가진 개그라 한번 해봤슴다! ^^

오늘 소개드릴 영화가 "처녀들의 저녁 식사"거든요.



2000년에 "눈물"이라는 자신의 두번째 영화를 내놓았던 임상수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사람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낄낄거리며 웃어제꼈던 제가, 막연한 호기심에 어느 노총각 후배에게 영화를 빌려주면서 한번 보라고 했거든요? 보고 난 그 후배 왈: "이거 남자가 만들었죠?" "응. 근데 왜?" 그 후배는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여자들이 보면 별로 기분 유쾌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남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라는 느낌도 많이 들고..." 라고 하더군요.

사실 저도 여성 문제는 여성이 더 잘 안다, 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굳이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제게는 오히려, 아, 여자들이, 그것도 "처녀들"이, 자신의 성에 대해 저렇게 솔직하고 유쾌하게, 멀쩡한 젊은 남자를 하나 옆에 앉혀 두고 이야기하는구나, 시원하다, 하는 느낌이 먼저 다가왔었거든요. 아마 첫 장면에서 얻게 된 그 유쾌한 느낌이 영화 보는 내내 지속되었던 탓인지도 모르죠. 제 남자 후배가 지적한, 남자의 시선을 굳이 찾으려고도 들지 않았거니와, 등장한 처녀들의 캐릭터가 여성학적 시각에서 볼 때 문제가 많다, 뭐 이런 생각들, 안 하면서 보았어요.

그렇지만 다른 분들은 그런 느낌들을 강하게 가지면서 보실 지도 모를 일이죠. 비디오 빌려다가 보시게 되면, 과연 이 영화가 그런 면에서 문제가 있는지, 어떤 점들이 "남성적" 시선인지, 한번 조분조분 따져보면서 보도록 하세요. 그런 식으로 영화 보기도 참 재미있거든요.

98년 영화가 첫 개봉되었을 때 이미 떠들썩하게 인구에 회자되었던 터라 줄거리는 대충 들으셨을 거예요. 제목이 설명하는 것처럼 세 처녀들이 모여 앉아 저녁 식사를 하면서 자기들이 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성에 대한 자기들의 생각이 실제로 어떻게 생활에서 나타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세 처녀들이 모였으니 성격도 각각이라 어느 여자는 거의 프리섹스 주의자고 다른 한 여자는 결혼이 지상 최고의 목표이며 또 한 여자는 완전 성에 대해 맹탕이면서 자위로 자기 욕구를 식히는 식이죠. 말하자면 영화라는 밥상을 위해 여러 가지 반찬을 골고루 모은 거죠. (이런 전형적 판짜기가 좀 뻔해 보여서 식상하다는 느낌을 주긴 했어요.) 이 밥상에 깍두기로,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조재현이 등장해서 세 여자들 중 두 여자와 자보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남자가 여자를 데리고 논다기보다 거꾸로 여자들의 진지한 실험 대상이 되었구나, 싶은 느낌을 줍니다.

아, 그래요, 이제 알 것 같아요. 제가 왜 이 영화를 골치아프게 분석하지 않고 그저 유쾌하게 웃으며 보았었는지, 왜 분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는지... 이 영화, 참 쉽게 이야기를 풀어가거든요. 마치 "인간 시대"와 같은 다큐멘터리처럼 그냥 세 처녀들의 생활, 그 중에서도 남자와의 관계에 중점을 맞추어 그들의 생활을 보여주지요. 영화 많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하자면 그렇게 "지적인 영화"는 아닌 셈이죠. 숨어있는 코드없이 다 열어서 보여주니 말이죠. 풀고 싶은 코드를 여기저기 숨겨 두어 지적 욕구도 채워주는 코미디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한 남자 감독의 첫 데뷔작치고는 괜찮다, 하고 봐주는 심리가 많았던가 봐요. (제 태도가 너무 너그러운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영화를 코미디! 하고 끝내기에는 아쉽다, 라고 서두에 말한 이유는, 감독의 용감무쌍함 때문이죠. 제 기억에 한국 영화 역사상, 어두운 조명과 야리꾸리한 음악없이, 그렇다고 무슨 해부학 강의처럼 심각하지도 않게, 혹은 홍상수 감독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서글픈 것도 아니게 성행위 장면을 보여준 건 이 영화가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게다가 여자들이 실감나게 늘어놓는 성에 대한 묘사는 또 어떻구요! 이 점에서는 당당한 커리어 우먼이자 섹스를 쾌락의 도구쯤으로 파악하는 여자로 나오는 강수연의 대사들이 압권인데, 그건 직접 보고 실감하세요~. ^^

이 영화를 본 많은 여자들이 떠올린 질문 중의 하나는 "정말 저럴까?" 였을 것 같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우리나라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여성들이 정말 저렇게 대담하고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성생활을 할까? 저 개인적으로는, 현실적으로도 영화처럼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긴 이미 현실적으로 그런 상태에 도달했는지 모르죠. 하지만 아직 다들 쉬쉬하면서, 한편으로는 죄책감 같은 걸 가지고 성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제 우리도, 성 담론이 남자들 사이에서고 여자들 사이에서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되다 보면 구성애 씨의 "아우성" 강연 같은 것도 이제 더이상 필요없게 되는 시대를 맞아야 될 텐데 말이죠.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더: "아줌마들의 점심 식사"라는 제목의 - 아무래도 아줌마들은 저녁 때보다는 점심 때 시간이 많이 남을 테니까 ^^ - 영화도 곧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흔히 우리나라 "아줌마" 라벨 뒤에는, "처녀 = 성적 순진무구"의 반대인, "농익고 노련한", 그래서 밤마다 남편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존재라는 수식어가 붙질 않던가요? 그 아줌마들이 나누는 성 담론! 물론 거기서 "처녀들의 저녁 식사"보다 더 노골적이고 질탕한 이야기들만 흘러 나온다면 한지일 감독류의 시리즈 중 한편, "짬뽕 부인 퉁퉁 불었네" 같은 영화가 되겠죠. 제가 "아줌마들의 점심 식사"에서 기대하는 건, 남자들의 성적 허영과 오만을 고발하는 "처녀들의 저녁 식사"의 처녀들을 한 단계 넘어서서, 더 큰 인간적 성숙함으로, 책 읽어서 얻어낸 설익은 사회 과학, 여성학 지식이 아니라, 삶을 통해, 혹은 "살을 통해"(!) 깨달은, 남자들의 성적 허영과 오만의 싹을 틔우고 북돋워준 이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이 측은한 남자들을 오히려 감싸안아 줄 수 있는 아줌마들일 겝니다. (어어~ 이야기가 왜 이렇게 되었나...?)

이 영화, 꼭 아줌마 친구들과 함께 보세요. 보시고 나서 본인들 이야기도 한번 해보시구요. 유쾌한 시간이 될 거라고, 장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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