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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자료를 다른 곳에 사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제가 어디 명함 내놓을 만한 버젓한 영화 평론가는 아니지만 여기 저기 영화에 관련된 작은 글을 쓰느라, 또 개인적인 즐거움 때문에라도 자주 영화를 보는 편이거든요. 그렇게 영화를 많이 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특정 영화들에 대한 선입견 같은 게 생기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 중에 가장 강한 선입견은 아무래도 감독을 둘러싼 선입견이겠죠. 누구 누구 감독이 만든 영화다, 하면 아아, 그 사람은 어떤 영화를 주로 만들어 왔으니까 이 영화도 괜찮겠군, 혹은 그 반대로 그 영화 안 보는 게 낫겠군, 하는 결론을 내리지요. 제 경험에 의하면 감독에 대한 선입견은 그래도 크게 배신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젖소 부인" 만들던 한지일 감독이 갑자기 백팔십도 방향 전환해서 "벤허" 같은 명작 만들 리는 없으니까요.

두번째로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불러 일으키는 요소 중 하나가 영화 배우입니다. 누구누구가 출연했다고 하면, 아, 그건 전형적인 헐리웃 오락물, 혹은 심각한 독립 영화, 이런 생각을 쉽게 떠올리게 되지요. 이 판단 또한 크게 틀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요소는 감독이라는 요소보다는 그 적중률이 다소 떨어지지요. 성룡처럼 심각한 영화에는 한번도 나오지 않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처럼 "타이타닉" 같은 전형적인 헐리웃 영화에도 출연하다가 "쎌레브리티" 같은 비주류 영화에도 과감하게 출연하는 친구가 있으니까요.

이 긴 주절거림을 늘어 놓은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눈치 빠르신 분들은 이미 아셨겠지만, 제가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가 바로 이 선입견 때문에 보지 않고 저 구석으로 밀어 붙여 놓았다가 우연히 보고 나서는, 아뿔싸, 내 판단이 틀렸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저로 하여금 이 영화에 대해 당장 선입견을 갖게 한 영화 배우, 그건 쥴리아 로버츠였어요. 쥴리아 로버츠는 요즘 헐리웃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지경으로 잘 나가는 여자 배우면서도 가끔씩은, 아일랜드의 혁명적 지도자이자 독립 운동 그룹인 IRA 의 창시자를 다루는 영화 "마이클 콜린스" 같은 데에 출연하기도 했죠. (물론 전 남편이었던 리암 니슨의 청이었던 탓에 출연을 수락했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거나 그 영화 관련 인터뷰에서는 "그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내게 출연 요청을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하는 요살을 떨더군요. - 내가 좀 심하게 말했나...? ^^ 쥴리아 로버츠 팬 여러분, 용서하세요.)

쥴리아 로버츠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꽤 의미있는 영화였다? 무슨 영화일까요, 네, 맞습니다, 그건 바로 "에린 브로코비치"였습니다!

보신 분들도 꽤 많을 거라고 봐요. 쥴리아 로버츠가 오스카상을 거머쥘 수 있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거니와 흥행 면에서도 - 아마 이 점에서는 쥴리아 로버츠가 크게 기여했겠죠 - 대단히 성공했으니 말이죠.

이 영화는, 돈도 없고 빽도 없고 거기다 학벌도 없는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여자가, 왕년에 미의 여왕으로 뽑힐 만큼 예쁜 얼굴과 몸매 하나만 믿고 살면서 그럭저럭 두명의 전남편을 둘 만큼 이혼 경력도 생기고 딸린 애들은 줄줄이 세명인데, 먹고 살 길이 막연해서 이리저리 직장을 찾던 중, 어느 법률 사무소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우연히 한 대기업이 수질 오염으로 한 마을 주민 전체의 건강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그 뒤로 몇달 동안 그 일에 매달리죠. 그녀는 정말 "몸 바쳐" 그 일을 합니다. 마을 주민들을 하나하나 만나서 피해 사례를 기록하고 오염 증거를 찾아내는 일을 하던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청천벽력 같은 해고장이었어요. 법률 사무소 대표인 변호사 에드가, 오랜 기간 사무실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에린을 오해하여 해고한 거죠. 하지만 에드는 곧 그 오해를 풀게 되고, 에린이 시작한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인정하게 됩니다.

영화는 그 뒤로 에드와 에린의 공동 작업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고, 에린이 그 소송에서 승리하기까지의 지난한 시간들을 때로는 건조하게, 때로는 지루하게 보여주지요. 아마 감독은 그 건조하고 지루한 장면들을 통해 에린이 느꼈을 힘겨움들을 전달하고자 했던 듯해요. 하긴 이 영화를 만든 "스티븐 소더버그"는 이미 그 이전 영화들을 통해 이런 식의 장면들을 많이 보여주었었죠.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라는 영화 기억하시죠? 그것말고 유명한 영화로는 최근에 나왔던 "트래픽"을 들 수 있겠죠. 마약 거래단과 그를 일망타진하려는 미국 정부의 노력 등을 보여준 이 영화 역시 요소요소 다큐멘타리적 기법의 카메라 움직임이나 장면 진행을 보여줍니다. 지루하고 건조하다... 생각해 보니 이런 수식어들은 꼭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절제"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네요.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에린의 열살짜리 큰아들은 어머니가 하는 일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거든요. 날마다 늦게 들어오지, 아들의 중요한 일들도 다 잊어버리지... 그러던 어느날, 큰아들이 우연히 에린이 기록한 한 마을 주민 딸의 병상 기록을 읽게 됩니다. "나랑 나이가 같네..." 하고 중얼거리던 큰아들은 에린에게 그 딸과 부모의 이야기를 조금 얻어 듣고서는, 아침을 먹으러 패스트푸드점으로 나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오믈렛 사다 드릴까요?" 에린은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는 알게 되죠. 에린의 큰아들이 에린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 정치적이면서도 흥행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영화들의 연타를 기록하는 똘똘한 감독 소더버그의 나이가 글쎄 서른아홉밖에 안 되었다네요. 우리 큰언니 나이도 서른아홉인데... (이게 웬 뚱딴지 같은 발언입네까? 우리 련변에서는 고저 이런 식으로 비교하면 기분이 와따가 됨다. 왜냐? 고저고저 이렇게 하면 왠지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임다. ^^)

오늘 제가 쓸데없는 잔소리가 좀 많은 것 같죠? 제 고질병입네다... 이러다가 중요한 얘기는 꼭 이렇게 끝에 와서 요점 정리, 식으로 간단히 끝내니 말이죠...

이 영화에서 저는 두 가지 점을 주목해서 보게 되더라구요. 한가지는 미국의 법 질서. 끝까지 법정 소송을 통해 마을 주민들이 원하는 심리적 피해 보상을 받기 원하는 에린에게, 수십년간의 변호사 생활로 이 방면에는 이골이 난 에드가 조용히 말하죠. "이 소송이 몇년 걸릴 것 같나? 틀림없이 수십년이 걸릴 게고 소송 비용 걱정 없을 우리의 적들에게는 아무 상관없겠지만, 우리는 아무 이득도 없이 계속 소송만 하다가 결국 손 들고 나가 떨어지게 될 거야." 그래도 회사가 잘못했다는 걸 법정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케 해야 한다고 고집하던 에린, 결국에는 에드의 말에 승복하게 됩니다. 독일도 그렇지만 미국도 변호사 일로 밥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 밤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죠. 하지만 결국 돈이 있어야 재판도 하는 법, 이 영화 자체는 돈 많은 대기업이 강한 의지의 에린과 똘똘 뭉친 주민들의 힘에 패배했다는, "사실이기에는 너무 행복한" 결론을 보여주지만, 저는 에드의 발언에서 오히려, 돈없는 자들이 돈 없기 때문에 당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돈 없다는 사실 때문에 패배하거나 포기했을 수많은 재판들을 상상하게 되더군요.

이보다 더 저를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던 점은 "아줌마 에린"의 변화입니다. 에린이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에드와 사뭇 다르죠. 대기업에게서 피해 보상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피해 주민의 70% 이상의 서명이 필요한데, 그걸 어떻게 다 받나, 하고 나가떨어지는 에드와 달리, 에린은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서명을 받죠. 그녀 머리 속에는 그녀가 만났던 육백여명 주민들의 신상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에린은 영화에서 "따뜻한 가슴으로 일하는, 약자 편에 선 여자"로 묘사되는 거죠. 한번 생각해 봤어요. 이런 에린이 에드처럼 정식으로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십수년 변호사 생활을 했다면 과연 이렇게 따뜻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정통 코스를 밟아나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품었던 초심보다는 그 업계의 어두운 메카니즘을 더 약삭빠르게 알아차립니다. 처음엔 잠시 절망하지만, 금방 적응하죠. "배운 놈이 더한다"는 말이 달리 나왔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중국에서 "문화 혁명" 때에 지식인들을 "하방" - 농촌 등으로 보내서 기본 출신 민중들과 생활하게 하는 것 - 시켰던 건 대단히 잘한 일이었다는 나이브한 결론도 내리게 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여유~).

"에린 브로코비치"는 실화에 근거한 영화라고 합니다. 에린과 에드는 이 사건 이후로도 여러 차례 비슷한 사건에서 승소했다고 하네요. 실제 인물 에린이 경력을 쌓아가면서도 세월과 함께 썩지 않고, 끝까지 자기 신념대로 약자의 편에 서서 싸울 수 있었다면, 그 힘은 오로지 한 가지에서 나왔다고 볼 수밖에 없겠죠. 에린은 이혼녀라는 것 때문에,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것 때문에, 고상하신 어른들 틈에 어울리지 않게 노출이 심하고 천박해 보이는 옷을 입었다는 것 때문에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어려운 시절을 겪었거든요. 자기의 어려웠던 시절에 근거해서 남들의 힘든 상황을 거의 본능적이다시피 알아차리고 민감할 수 있다는 것, 이것도 하나의 큰 재산이겠죠. 그 재산을 바탕으로 해서 변함없이 싸워나갔다는 것, "아줌마 에린"의 이 변하지 않음이 제게는 에린의 대단한 "변화"로 느껴졌어요.

자, 횡설수설인데다 골치아팠던 영화 소개, 이쯤에서 마칩니다. 지금 마악 씩씩하게 독립적 아줌마로서의 삶을 개척하려고 마음먹으신 분, 그를 위해 용기가 필요하신 분, 다소 영웅주의적이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영웅주의적이지는 않은 "에린 브로코비치"와 함께 시작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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