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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자료를 다른 곳에 사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오늘은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사랑", 한때는 그 단어를 입밖에 소리내어 말할 때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절실한 말이었는데, 이제는 유행가 가사에서 흘러나오는 그 단어에서 군내밖에 못 맡겠다구요? 그렇다면 이런 해석은 또 어떨까요?

사랑은 대화이다. 그가 누구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지만 알 수가 없기에 말은 끝나지 않고 의미는 지연된다. 그의 얼굴에서도 나만 보기 때문에 그의 마음을 얻을 수가 없다. 내가 욕망하는 것은 그의 마음인데 말은 마음을 다 담지 못한다. 언제나 대화는 빗나간다. 전이 때문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끝없이 언어의 베일을 보는 것, 베일 뒤에는 아무 것도 없음을 알면서도 그 베일을 걷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이 글은 경희대 영어학부 교수이신 권택영님의 "감각의 제국 - 라캉으로 영화 읽기"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라캉이 누구냐구요? 인용된 글도 너무 어려워서 이해를 못하시겠다구요? 그러지 말고, 저 글이 대학 교수님이 쓰신 게 아니고 그냥 누군가 사랑에 빠진 사람의 글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그렇잖아요, 맞잖아요, 언제나 대화는 빗나갔었고, 나는 나 자신의 생각을 알 수 없었고, 수차례의 상처로 베일 뒤에는 아무 것도 없음을 알면서도 그 베일을 걷을 수 없었잖아요, 그것이 사랑이었잖아요?

권택영님은 영화 "접속"을 해석하면서 이 영화 처음에 흘러나왔던 라디오 디제이의 대사 "삶은 때로 먼 길을 원합니다"가 이 영화 주인공들의 운명을 예시해주는 복선적인 신의 음성이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접속"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두 주인공 수현 (전도연 분)과 동현 (한석규 분)은 멀고 먼 길을 돌아, 접속될 듯한 말 듯한 순간들을 스쳐 지나가 마지막에는 결국 성공적 접속을 하게 됩니다.

긴긴 서문을 접고 본론으로 들어가 제가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는, "접속"이 아닌, "파이란"입니다. 이미 많이들 보셨다구요? 하지만 우리, 권택영님이 했던 해석 방식을 좇아 이 영화를 한번 다시 들여다 보기로 해요. 제가 위에서, 라디오 디제이의 대사가 운명을 예시하는 신의 음성 같은 것이었다고 썼었죠?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친절하게도 미리 설명해 주었던 그 음성, 우리로 하여금 멀고 먼 엇갈림의 여행을 시작할 준비를 하게 해주었던 그 음성, 영화를 관통한 그 음성, 그 음성의 역할을 한 게 "파이란"에도 있을까요?

아 참, 그러고 보니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군요. 그 분들이 소외된 듯한 느낌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 되도록이면 짧게 줄거리 소개를 할께요.



파이란은 하나뿐인 엄마가 돌아가신 뒤 한국에 자리잡고 산다는 이모를 찾아 무작정 한국으로 온 젊은 중국 처자의 이름입니다. 그녀는 한국에 체류할 비자를 얻기 위해 얼굴 한번 못 본, 깡패 집단 속에서도 가장 하류급의 건달인 이강재와 서류상의 결혼을 하지요. 술집으로 팔려나갈 위기를 재치있게 빠져나간 그녀, 어느 바닷가 마을 세탁소에서 열심히 일하며 꿈을 키워가지만, 아마도 유전이었던 듯 불쌍한 그녀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가 세상을 뜬 뒤에야 이강재는 그녀의 존재를 비로소 실감하게 되지요. 중국인들과의 서류상 위장 결혼을 알선해 주고 알선비를 챙겼던 강재의 조직에서, 강재의 파이란과의 결혼이 위장이 아니었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라도 강재를 파이란이 사망한 곳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거든요. 파이란의 유품 속에서 강재에게 보낸 편지를 손에 받아든 강재, "강재 씨, 강재 씨가 제일 친절한 사람입니다. 저와 결혼해 주셨으니까요..." 하는 문장을 보고 수없이 읽어보는데...

이미 영화를 보신 분들은 결말을 아실 게고, 아직 못 보신 분들은 궁금증에서라도 이 영화를 한번 보시라고 결론은 생략합니다. 또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사실 결말과 큰 상관도 없거든요.

제가 영화 "파이란"에서 영화를, 주인공들의 운명을 관통하는 그 "음성"이라고 생각하는 건 바로 편지 속의 이 문장, "강재 씨가 제일 친절한 사람입니다" 예요. 고향에 큰 배 한척 사서 돌아갈 때까지는 열심히 살아보리라, 하는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강재, 만만치 않은 세상 풍파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깡패 조직에 몸담게 되는데, 그나마 넘버 투, 넘버 쓰리도 되지 못하고 함께 조직 생활을 시작한 고향 친구가 조직의 두목이 된 현실 앞에서 쓴 눈물만 삼켜야 합니다. 깡패 주제에 인정은 많아서 넘덜에게 심하게도 못하고 그러다보니 조직 안에서 한직, 한직으로만 밀려나고 결국 나이 어린 것들에게서도 푸대접 받는 신세... 이래 보나 저래 보나 쓰레기 같은 인생인데 그 인생에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런 자기가 가장 친절하다구요, 돈 몇십만원 때문에 위장 결혼해 준 상황도 모르고 오로지 결혼해 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기를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절한 사람으로 생각해 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한편, 파이란은 강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지만, 아무도 돌봐 주지 않는 타향 낯선 곳에서 자기를 위해 친절을 베풀어준 한 남자가 있다는 생각에, 그 고마움에 북받쳐서 "당신이 제일 친절합니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그때부터 그 생각은 그녀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생각은 생각을 자꾸 키워가지요. 친절하다고만 생각했던 그 남자를 꿈속에서도 그리고 그러다간 외로운 바닷가 마을에서 그녀는 마침내, 이름 석자밖에 모르는 남자를 좋아하고 그리워하고 결국 찾아가기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순간이 있었어요. 하지만 영화 "접속"에서처럼 둘은 묘하게 만나지 못합니다. 파이란이 강재를 찾아 온 바로 그 순간, 강재는 습격하다시피 찾아온 경찰에게 연행되거든요.

파이란이 베일을 벗길 수 있던 순간이 날아가 버린 것이죠. 강재 역시 파이란을 그 자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더라면, 파이란이 죽은 뒤 그 바닷가 마을에 찾아가 그녀의 남편 행세를 하고, 그녀의 시신을 태울 때 오열할 지경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접속"에서 두 주인공이 행복한 해후를 하는 반면, "파이란"에서는 이미 둘이 만날 수 없다는 상황이 전제되어 있지만, "파이란"의 처절하고도 한편으로는 저승에서의 두 사람의 해후를 약속해주는 마지막 장면은 꽤 인상적입니다. "파이란"은 화면에서 웃고 있고 강재는 죽음의 고통으로 신음하지요. 두 사람이 저승에서 만나면 서로 제일 먼저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요? "내가 죽음의 고통으로 괴로워할 때, 당신은 어디 계셨나요?"

독일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Lange Rede, kurzer Sinn!" "긴 말, 그러나 짧은 의미!" 제 글이 그 격이 되어버린 듯하네요. 정리하자면 저는 두 영화에서 모두 사랑의 환상, 베일이 벗겨지기 전까지만 사랑은 가능한 게 아닌가, 뭐 이런 것들을 읽었답니다. 너무 비관적이라구요? 웬걸요, 우린 그걸 알면서도 또다시 사랑에 빠지잖아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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