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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자료를 다른 곳에 사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심혈을 기울였다는 배창호 감독이 들으면 실망할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영화 "흑수선"을 보고 화까지 치밀었어요. 아마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더 화가 치밀 것 같아요.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 화가 치민 이유는 두가지였죠. 배창호 감독이 누굽니까, 나름대로 우리나라 영화사에 뚜렷이 이름을 남긴 독특한 영화 감독 아닙니까?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 사냥", "적도의 꽃" 등으로 시작된 그의 필모그래피(Filmography)는 비록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황진이"나 "정" 같은 영화로 이어졌고, 그런 탓에 저는 아 그래, 배창호 감독의 영화라면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손색이 없을 거야, 하고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그의 영화는, 저와 같은 기대를 한 이들을 실망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엇나간" 작품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이런 영화가 부산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영화제의 얼굴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이들이 부산 영화제에 대해 가질 이미지가 몹시 걱정되었거든요. 이제 한국 영화가 노골적으로 흥행성 위주로 나아가기 시작했군, 하는 이미지를 주지 않을까 하는 게 저의 우려입니다. 영화 자체에 대해 실망감을 표시한 사람 중에는 저 같이 말발 안 서고 힘없는 이만이 아니라 네덜란드의 영화 평론가 피터 반 뷰렌이나 "거기는 지금 몇시니?"를 들고 온 대만의 차이밍량 감독 같은 유명인들도 있습니다. 특히 차이밍량은 다음과 같은 날카로운 지적을 했지요. "한국 영화에 볼거리가 풍성해졌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한국인이 만들어내는 영화가 할리우드 제작자가 만든 것과 똑같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크기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날카로운 비판 정신과 창조력이 결여된 영화가 결국 어떠한 결말을 맞게 되는지는 홍콩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지 않나." ("씨네 21 데일리" 11월 11일자 기사에서 인용)

제가 "흑수선"을 두고 하고 싶은 말도 바로 이겁니다. 영화 "흑수선"은 할리우드 영화의 모작이라는 느낌을 "진하게" 전달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우선 음악부터 "양들의 침묵"을 바로 떠올리게 하는, 특히 영화 시작하는 부분의 카메라 워킹과 음악의 콤비는 "양들의 침묵" 어느 장면을 그대로 본딴 것이 아닌가 하는 불쾌감을 줄 정도였습니다. (이런 말 해서 안 됐습니다만, 저는 이 부분에서 "흑수선"의 음악을 담당한 최경식 씨가 음악 표절 시비에 휘말렸었던 과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영화의 광고 문구가 솔직하다는 점 하나는 인정해야겠습니다. "2분마다 터지는 스펙타클한 액션!! 세계에서 가장 높은 테루하 흔들다리 항공 촬영!! 일본 추격씬 13분에 8억원 투여!! 6,800평의 거대한 거제 포로 수용소 세트!!" 스펙타클한 액션과 항공 촬영과 거대한 세트를 보고 싶은 분이 있으시다면, 그것도 한국에서 그런 일에 자본 투자를 얼마나 많이 할 수 있나를 확인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꼭 이 영화를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영화란 그런 요소들로만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귓동냥해서 들은 이야기로는 영화 "무사"도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정작 스토리와 인물이 살아있지 않아 흥행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영화의 흥행 실패담을 듣고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래 우리나라 관객들 수준이 이 정도는 되지, 하는 생각에서였죠. 이제 왜 제가 앞에서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더 화가 치밀 것이라고 말씀드렸는지 짐작이 되시죠?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가뜩이나 연이은 코미디 영화들"만"의 흥행 성공 - 그에 대비되는 "고양이를 부탁해" "나비"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흥행 실패 - 탓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한국 영화판에 더욱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는 셈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팬 여러분, 그러니 제발 "흑수선" 보러 너무 많이 가지 마세요.

이렇게까지 심하게 말했으니 심하게 말하는 이유를 더 정확히 밝혀야겠죠. 저는 이 영화의 소재상 "쉬리"나 "JSA 공동 경비 구역"이 그 비교대상으로 놓여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 두 영화 역시 논란이 많기는 했었죠. 특히 "쉬리"는 남북 문제를 왜곡해서 또다시 반공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했다는 식으로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단 "쉬리"가 용기있게 남북 문제를 다루었다는 면에서 점수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영화 시장의 흥행면에서의 물꼬를 틔워줬다는 면에서도, 또한 남들 안 할 때 그렇게 큰 자본을 투자하는 도박을 했다는 점에서도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고 보았구요. "JSA 공동 경비 구역"은 제가 보기엔 나름대로 진지하게 남북간 대립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또 사실성과 개연성이란 면에서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구요. 제가 "흑수선"에서 가장 실망하는 점은, 과연 배창호 감독이 이 영화의 중심 사건인 "거제 포로 수용소 사건"과 빨치산 문제를 영화인으로서의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다루었는가 하는 데에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정확한 재현도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거제 포로 수용소 사건"은 그저 들러리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영화의 중점은 지고지순한 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 쿨 해 보이려고 애쓰는 한 형사와 과거를 감추고 일본에서 일본인인 체하며 살아가고 싶어하는 한 빨치산 출신 사업가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있습니다.

쓰고 보니 정작 영화 줄거리는 소개도 안 했군요. 하지만 배창호 감독이 기자 회견장에서 말한 것처럼, 이 영화는 미스테리물의 무늬를 가지면서도 미스테리적 궁금함을 자아내는 데에는 별로 중점을 안 둔 것 같으니 자세한 줄거리 소개는 필요없을 것으로 봅니다. 한 형사가 두명의 연쇄 살인 사건을 추적하다가 이 사건과 52년 거제 포로 수용소 사건의 연관을 알아내게 됩니다. 그 뒤로는 그 당시 얽히고 설킨 남과 북의 대립 상황이 여러 인물들을 통해 묘사되지요. 더 자세한 줄거리 알고싶으신 분은 "흑수선"의 공식 홈페이지를 찾아주세요~ www.lastwitn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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