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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자료를 다른 곳에 사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몽마르뜨에 올라가 보신 일이 있나요? 거리의 화가들이 저마다 귓동냥으로 배운 여러 나라 말로 초상화를 그려주겠다고 손님을 부르는 그 몽마르뜨에 올라가 보신 일이 있나요? "언니, 이리와, 예쁘게 그려줄께"라고 말하는, 한 반백의 화가 때문에 혼비백산한 적이 있는 저는 몽마르뜨, 하면 그 초상화 화가들밖에 잘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제 제 기억의 "몽마르뜨 디렉토리"에 한 가지 더 추가될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건 바로 제가 "아멜리에 뿔랭의 근사한 세계 (Le Fabuleux destin dAmelie Poulain)"를 훔쳐보았기 때문이죠.



영화가 시작되면 아멜리에의 어릴 때 놀이들이 차례차례 소개됩니다. 유럽 아이들이 어떤 기구를 이용해서, 어떤 놀이를 하며 노는가를 한눈에 보실 수 있어요. 엄지와 검지에 색칠을 해서 얼굴을 만들어 놀기, 도미노 게임, 산딸기를 손가락마다에 끼워놓고 입술과 혀가 벌겋게 되도록 먹기, 감긴 종이 리본을 후~하고 불기 등등... 아멜리에의 어린 날이 소개되면서 아멜리에 엄마와 아빠도 소개되죠. 확실한 건, 두 사람 다 병적일 정도의 정리벽이 있어서, 일테면 아빠는 먼지 잔뜩 쌓인 공구함의 먼지를 턴 뒤 공구들을 다시 차례차례 정리해 넣는 일을 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고, 엄마 역시 자신의 핸드백을 열어 바닥의 먼지를 다 턴 뒤 핸드백에 들어있던 내용물들을 다시 집어 넣는 일이 삶의 유일한 기쁨인, 그런 사람들이예요. 이들의 노이로제 증세는, 영화 전체가 주려는 메시지, 인생에서 과연 소중한 게 무언가?를 위한 일종의 복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상의 먼지에 갇혀서 그 먼지 너머 보석같이 빛나는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주는 반짝거림, 그게 이 영화라고 보시면 돼요.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소개할 때, 제가 그랬었죠? 영국인들의 미국을 비꼬는 유머를 찾아볼 수 있다구요. 아멜리에도 그런 대사를 한 마디 하더군요. "제가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미국 영화에서 자동차 운전하는 사람들이 앞을 보지 않고 옆에 앉은 사람에게 거리낌없이 얘기를 해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나지 않는 거예요." 반대로 그녀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집 지붕 위에 올라가 빠리 시내를 내려다보는 일이죠. 가끔씩 그녀는 바로 그 순간 오르가즘을 느끼는 사람들이 몇쌍이나 되나, 세는 일도 해요. "방금 열다섯쌍이 오르가즘을 느꼈어요!"라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열다섯쌍의 오르가즘 만끽쌍들의 장면 뒤로, 아멜리에가 우리에게 속삭이죠.

아멜리에 자신은 영화 속에서 오르가즘 느낄 일을 시도하지 않냐구요? 웬 걸요, 아멜리에는 그것도 우리에게 이야기해줘요. 남자랑 한번 자보기는 했는데, 지루했대요... 그렇지만 영화 마지막에 우리는,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정말 근사한 오르가즘을 느끼고 평화로운 얼굴로 빛나는 아멜리에의 얼굴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영화의 중심이 아멜리에의 오르가즘은 아니예요. 그것보다 더 근사한 일들이 세상에는 많은 걸요! (적어도 제 지금의 견지로는 말이죠.)

영국의 다이애나비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전해 듣는 바로 그 순간, 아멜리에는 무언가를 떨어뜨리고, 그걸 계기로 자기방 벽 뒤에 숨겨져 있던 누군가의 보물 상자를 발견해요. 그건 아멜리에보다 수십년 앞서서 그 방에 살았던 어떤 남자아이의 보물 상자. 자기가 좋아하는 권투 선수 사진, 구슬, 딱지 등이 들어있는 때 꼬질꼬질 묻은 보물 상자죠. 아멜리에는 그 순간 생각하죠. 지금은 나이 들고 늙었을 그 사람이 이 상자를 돌려받게 되면 얼마나 기뻐할까? 단순한 이 생각 하나로, 몽마르뜨 근처 까페에서 웨이터로 일하는 아멜리에는 그 남자를 찾아보기로 결심합니다. 몇번의 실패 끝에 결국 그 남자를 찾아낸 아멜리에는 기발한 방식으로 그 남자에게 상자를 전하고, 그 남자가 기쁨에 겨워 눈물 흘리는 것까지 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죠. 그때부터 아멜리에의 인생은 달라지는 거예요. 채소 가게에서 일하는 청년을 사정없이 구박하는 채소 가게 주인을 "은밀하게" 괴롭혀서 버릇 고쳐주기, 인생이 따분해서 미치겠는 자기 까페 단골 고객과 자기 까페에서 담배 파는 여자 맺어주기, 전쟁에서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해 그리워하는 미망인에게 편지 보내주기, 수십년 동안 자기 방 안에서 르노와르의 그림만 수십번 베껴 그리는 화가에게 다른 삶을 보여주기, 엄마의 죽음 이후로 마찬가지로, 정신적으로 세상을 등진 아빠가 바깥 세상으로 여행가도록 고무하기 등등... 이 에피소드 중 한가지만 소개드릴께요.(오른쪽 사진은 미망인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그녀의 죽은 남편이 생전에 보냈던 편지를 조립, 편집해서 새로운 연애 편지를 만드는 장면이죠.)



아빠는 어느날 창고 속에서 먼지 쌓인 정원 난장이를 꺼내어 오죠. (유럽의 정원에는 백설공주에 나오는 난장이 인형들이 정원 지킴이로 많이들 서 있죠.) 아빠는 그 난장이의 먼지를 털어서 정원에 있는 엄마의 기념비 옆에 세워 놓아요. 그런데 어느날 그 난장이가 없어진 거예요. 그리고 나서 아빠는 크렘린 궁앞에 서 있는 난장이 사진, 태국의 어느 사원 앞의 난장이 사진, 아프리카 어느 사막에 서 있는 난장이 사진들을 우편으로 받게 됩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빠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에 대한 아멜리에의 코멘트: "아마 여행이 하고 싶었던 게죠." 실은 아멜리에가 자기가 아는 스튜어디스에게 부탁을 해서 외국으로 갈 때마다 사진을 찍어 보내게 한 거예요. 그러던 어느날 난장이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고, 이제는 아빠가 택시를 불러 말합니다. "국제 공항으로 갑시다."



그 와중에 아멜리에 역시 자기 자신을 위한 기쁨을 발견하죠. 사랑에 빠진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랑을 조금씩 조금씩 키워 갑니다. 그것도 보고 있는 사람이 하하, 도 아니고 낄낄, 도 아닌, 그저 빙그레, 하고 미소를 머금고 입안에 달콤한 침샘이 고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그런 귀엽고도 아기자기한 방식으로... 하지만 그 방식까지 말씀드리면 정작 영화볼 때 재미없어질 것 같아 이제 영화 내용 얘기는 이만할래요. (왼쪽 사진은 아멜리에가 한눈에 사랑에 빠진 남자 니노와 처음으로 가깝게 조우하는 장면인데, 특별히 로맨틱하지는 않죠?)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인 쟝 삐에르 쥬네 (Jean-Pierre Jeunet) 는 우리에게 낯선 인물이 아니예요. "델리카테슨"이란 영화 보셨어요? 안 보셨다면 당장 비디오텍에 가서 빌려 보세요. 흥미진진, 기상천외한 이 영화를 안 보는 건 우리 삶에 있어 하나의 커다란 손실이예요! 독일 잡지 "슈피겔"에서는, 영화 "아멜리에"는 다른 감독이라면 벌써 서너개쯤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 에피소드가 들어있는, 이야기가 풍부한 영화라고 평가했더군요. 그 말이 맞아요,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영화 "아멜리에"를 정말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풍부한 건 이야기만이 아니라 장면장면의 색감들이예요. 장 쥬네가 얼마나 뛰어난 색감을 가지고 있는지는, 제가 어느 장면들에서 시선의 오르가즘을 느꼈다고 말한다면, 상상할 수 있을까요? 아아~ 하는, 그야말로 오르가즘의 절정에서 새어나올 수 있는 한숨이 터져나오더라구요. (이거 너무 에로틱했나요? ^^)

이 영화로 프랑스 영화계는 지금 한창 들떠 있어요. 프랑스에서는 4월부터 상영되기 시작했는데, 헐리웃의 어떤 영화도 이 영화의 랭킹 1위 아성을 깰 수 없었다는 거죠. 참고로, 올해 들어 프랑스 영화에서는 국내 영화의 점유율이 53 프로에 이르렀대요. 우리나라 국내 영화 점유율이 40 프로라는 것도 세계에 떠들썩한 뉴스가 될 지경인데, 53 프로면 정말 대단한 거죠. 영화 "아멜리에"는 수상인 자끄 시락도 엘리제궁에서 볼 정도로 프랑스에서는 유명한 영화였다죠? "프랑스 영화 감독들은 드디어 영화가 오락 산업이라는 걸 깨달은 것 같다"는 게 프랑스 영화계 저명한 감독 하나의 말인데, 40년대 "누벨 바그" 이후로 "작가 영화"의 전통을 붙잡고 있느라 대중을 놓쳤다고 볼 수 있는 프랑스 영화계에는 어쩌면 꽤 적절한 코멘트인지도 모르겠어요.

쓰다 보니 너무 길어졌죠? 말이 필요없어요, 이 영화, 들어오면 반드시 보러 가세요, 이 영화를 보면서 잠시라도 행복을 느끼세요, 아멜리에의 이웃이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행복은 투어 드 프랑스와 같다. 한참을 기다려서 드디어 보게 되지만, 순식간에 지나"가니까요. (투어 드 프랑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싸이클 경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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