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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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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하게' 그날 나는 두 번 울었다

 
[현장 리포트] 여기는 베를린영화제 ①
 
강윤주 기자 yunju_kang@hanmail.net
 
▲ 제 52회 베를린영화제 포스터 ⓒ 베를린영화제 공식홈페이지

기사를 시작하기 전에

무엇이든 시작이 어렵지만, 특히 기사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어떻게 글머리를 열어야 할까 하는 생각에 오랫동안 망설이게 된다. 하물며 오마이뉴스가 두 살 된 기념으로 차리는 생일상에 '기획 취재'라는 무서운 이름으로 실리게 될 기사를 쓸 때의 심경이야 오죽할까.

하루종일 기사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필자는 그냥 이렇게, 필자가 적어도 오랜 고민 끝에 이 기사쓰기를 시작했다는 점을 알리면서 기획 취재의 서두를 열기로 했다.

필자가 앞으로 며칠 동안 기획 취재 기사로 내보내게 될 이야기는 올해로 52회를 맞게 된 베를린 영화제에 대한 것이다.

알다시피 베를린 영화제는 깐느와 베니스 영화제 다음으로 오래된 영화제로서 흔히 세계의 A급 영화제 세 개를 꼽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관록 있고 명망 있는 영화제이다.

그래서 그런지 베를린 영화제가 열리는 2월을 전후해서 우리나라의 각종 영화 잡지들과 일간 신문들에서는 베를린 영화제에 어떤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가 왔느니, 우리나라 영화 중에는 어떤 작품이 경쟁작에 들었느니 하는 뉴스들을 실어대곤 한다.

그런데 뭣하러 오마이뉴스까지 덩달아, 게다가 기획 취재 형식으로 그 베를린 영화제 소식을 싣느냐고? 좋은 질문이다. 이 시점에, 필자는 다른 제도 언론들의 곁다리로, 혹은 덩달이로 영화제 소식을 전할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다.

그럼 어떻게 다른 언론들의 영화제 소식과 '차별화'할 것이냐고?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필자는 먼저 간단하게 필자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필자는 독일 서북부 도시인 뮌스터에서 영화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 영화 사회학이라는 게 생소하실 분들을 위해 쓰고 있는 논문의 테마를 밝히자면 '어떻게 하면 대안적인 형태로 영화를 생산, 배급, 상영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결국 얘기는 독립 영화로 돌아가게 되고 필자가 영화제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갈수록 많은 영화제들이 독립 영화의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자, 골치아픈 이론적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서둘러 본론으로 돌아가자.

필자는 그래서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영된 독립 영화나 단편 영화, 혹은 비디오 등 우리가 흔히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상물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려 한다. 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독립 영화와 예술 영화인들을 만나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생생한 분위기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아시는 분께서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는 세 편의 한국 영화가 상영된다.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가 경쟁 부문에 한자리 떡 차지하고 앉았고, 박기용 감독의 [낙타(들)]과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가 독립 영화 부문이라 할 수 있는 영포럼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이밖에도 순수 한국 영화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 소재가 김대중 대통령 납치 사건을 다뤘다는 면에서, 또한 한국의 영화 배우 김갑수 씨가 출연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상당히 흥미있는 일본 감독 준찌 사까모토(Junji Sakamoto)의 정치 스릴러물 [KT] 역시 경쟁 부문에 속해 있다.

영화 얘기도 영화 얘기지만 뒤늦게 우리나라에서도 이해와 인기를 얻기 시작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었는지 등도 필자가 호기심을 가지고 취재하려는 분야 중 하나이다.

필자의 기사에서 베를린 영화제에 상영되는 영화 전반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어하는 분은 다른 유수한 영화 잡지를 보시라고 정중하게 권하고 싶다. 필자는 영화만을 보러 영화제에 온 것도 아닐 뿐더러 필자가 앞으로 골라볼 영화는 대부분 정치물들이다.

이어질 기사에서도 볼 수 있겠지만 올해 베를린 영화제는 역사상 가장 정치성이 강한 영화제라고 알려져 있다. 정치사회학적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필자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기회인데다 오마이뉴스라는 지면에도 걸맞는다고 보았기에 필자는 서슴없이 수많은 영화들 중에 정치성 짙은 영화들만을 골라서 보기로 했다. 정치성 강한 영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필자의 베를린 영화제 보도를 쭉 읽어주셔도 괜찮겠다.

끝으로 필자가 아무래도 공부 중인 학생인 까닭에 영화제 기간 내내 열리는 여러 가지 심포지엄 얘기도 빠질 수 없는 기삿거리로 등장할 것이다.

이번 영화제에는 'special events'라는 이름 하에 여러가지 심포지엄이 열리는데 이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두 번쯤 생각해보았을 영화 산업 내의 문제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룬 심포지엄들로, 필자가 이해하고 소화한 만큼, 따분하지 않도록 잘 정리해서 전달할 작정이다.

자, 이쯤해서 길고 지루했던 기사 시작의 변을 줄이도록 한다. 독일인들이 잘 쓰는 말 중의 하나인 'Lange Rede, Kurzer Sinn'(긴 수다, 짧은 의미)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개막식 소개를 대신해서

 

▲ 경쟁부문에 오른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 ⓒ 베를린영화제 공식홈페이지

우리나라에도 부산 영화제 같은 큰 영화제에 대통령이 왔다간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는 독일 수상 슈뢰더를 비롯하여 쟁쟁한 인물들이 왔다 갔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개막식 자리에 있지 못했다. 하지만 크게 문제될 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다른 영화 잡지 기자들이 틀림없이 이 부분을 커버해주리라고 믿는 탓이다. 필자가 받아본 영화제 초청인들 목록에는 열 명이 넘는 한국의 영화 잡지 기자들 이름이 써있었으니 말이다.

이참에 잠깐 영화제 초청인사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지나가자. 영화제에는 자기 돈 내고 영화 보러 온 사람들도 많지만 이른바 초청장 (Accreditation) 을 받고 온 사람들도 대단히 많다.

올 베를린 영화제에는 무려 16000 명의 인사들이 초청장을 받고 영화제에 참가했다. 그 중 3400명이 기자들이라고 하니 베를린 영화제가 열리는 포츠담 거리를 오가는, 아이디 카드를 목에 건 사람들 다섯 명 중 한 사람이 기자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기자들이 받는 초청장의 위력은 막강하다. 이들은 자신이 받은 프레스 카드만으로 영화제의 어느 영화든 아무 문제없이 관람할 수 있고, 그것도 영화제의 일반 관객들이 꽉 찬 극장에서가 아니라 기자들만 따로 모아 놓고 하는 시사회에서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 그러하니, 영화제에 와서 영화를 찾아 볼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프레스 카드를 받아서 영화제에 참석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작년 부산 영화제 때 외신 기자 자격으로 참석했던 필자는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는 영화학 전공자로 다소 질이 낮은(?) 초청장을 받아서, 프레스 아이디와의 차이점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영화제에 상영되는 영화들이 영화제에 온 관객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일반 관객들에게도 가닿아야 하는 만큼, 그 다리 역할을 해줄 기자들을 상전 대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어쨌거나 영화 산업과 대중 매체와의 공생 관계를 확실하게 볼 수 있는 곳이 또한 영화제라는 장소이다.

그 반면 기자들이 찬밥 대우 받는 곳은 곳곳에서 열리는 파티에서이다. 부산 영화제 때에도 경험한 것이지만 최고의 초청장을 받은 기자들도 영화제 동안 열리는 파티에의 초청장은 대부분 받지 못한다. 부산 영화제 조직하는 분에게서 얻어 듣기로는 파티에 참석하는 영화 감독들이나 배우들이 적어도 파티 동안만은 기자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기자들은 이렇게 저렇게 정보도 얻고 고무줄 연줄을 바탕으로 해서 중요한 파티들에 참석하기 마련이다(이 소심한 성격의 필자가 그런 파티에 참석하게 될지는 아직 두고볼 일이다).

필자가 개막식 소개를 대신해서 쓰려던 건 실은 초청장 이야기가 아니었다. 정작 쓰려고 했던 건 올해 베를린 영화제의 전반적인 특징. 가장 중요하게 꼽을 일로는 오랫동안 베를린 영화제 조직 위원장을 맡아왔던 스위스 사람 모리츠 데 하델른(Moritz de Hadeln) 이 물러나고 디터 코슬릭 (Dieter Kosslick) 이 그 바톤을 이어 받았다는 점이다. 코슬릭은 독일 주정부 지원 영화 기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영화 기구의 장으로 경력을 쌓아왔다.

그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유머 감각도 탁월하고 대단한 사업가 기질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깐느 영화제가 내게서 영화 하나를 뺏어가면 나는 두 개를 훔쳐오겠다"라는 말로 다른 영화제들과의 경쟁 의식을 나타낸 그는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서 그 이전 위원장인 하델른이 계속 비판받아왔던 점을 확실하게 개선했다.

하델른이 욕을 먹어왔던 점은 바로 너무 많은 헐리웃 영화를 보여주었다는 것. 코슬릭은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서 경쟁 부문에 네 개의 독일 영화를 선정하고 '독일 영화의 창 (Perspektive Deutsches Kino)' 라는 섹션을 새로 만듦으로써 헐리웃 영화로부터의 결별을 분명하게 선언했다.

이제 겨우 13퍼센트에서 15 퍼센트라는,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열악한 자국 영화 국내 시장 점유율을 보이는 독일 영화 산업계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어떻게 평가받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일이다.

필자는 아직까지 유감스럽게도 코슬릭을 만나 인터뷰할 기회를 얻지는 못했지만?솔직히 말한다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으로 뛰어다니는 코슬릭에게 구텐탁, 하고 인사라도 건넬 시간이나 있을지 모르겠다?이제 곧 소개할 한 심포지엄에서 그의 '수다'를 잠깐 들을 수 있었는데 그의 유머 실력은 정말 상당했다.

아무리 딱딱한 자리라도 몇마디 말로 노골노골하게 만들 수 있을 만한 그의 언변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영화제 조직위원장에게는 안성맞춤인 미덕으로 보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으로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 있는 이번 베를린 영화제의 '정치성'이다. 독일의 일간지 <디 벨트>(Die Welt)는 이번 영화제를 베를린 영화제 역사상 냉전 종식 이후 가장 정치적인 영화제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표현할 만한 것이, 이번 영화제에는 독일의 적군파 (RAF) 핵심 인물이었던 바더(Baader)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바더]를 비롯하여 북아일랜드 평화 시위 유혈 진압을 생생하게 묘사한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와 김대중 대통령 납치 사건을 다룬 [KT], 또한 2001년 7월 이태리 제누아에서 열렸던 G8 정상 회의 때의 반세계화 시위대가 어떻게 무참하게 짓밟혔는지를 기록한 다큐멘타리 [다른 세계도 가능하다](Un altro mondo e possibile) 등이 상영되기 때문이다.

 

▲ 1972년 북아일랜드에서 벌어진 평화시위에서의 유혈진압 사건을 그린 <피의 일요일>. ⓒ 베를린영화제 공식홈페이지



두 번 울었던 날 ? <피의 일요일>과 <해피 타임즈>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영화표를 예매하고, 여기저기 베를린 시내에 흩어진 극장을 찾고 짬짬이 식사하고 심포지엄에도 참석하고 하다 보면 하루에 영화 두 개 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어쨌거나 이 날은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영화 두 편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하면서 동시에 피곤한 날이었는데 이 피로함의 진짜 원인은, 다름아닌 영화를 보며 흘린 눈물에 있었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이렇게 공평하게 한 번씩 울었다. 오전에 본 영화는 1972년 북아일랜드에서 있었던 평화 시위에서의 유혈 진압 사건을 그린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이었고 오후의 영화는 [붉은 수수밭]의 감독 장이모우의 [해피 타임즈](Happy times)였다.

오전의 영화는 다 보고 나면, 울지 않더라도 영화 보는 내내 갖게 되는 긴장감 때문에 피곤함이 엄습하는, 대단히 진지한 정치물이고 오후의 영화는 거의 멜로물에 가까운 인간 드라마. 하지만 두 영화의 공통점은 누선을 건드린다는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도 울 수 있고 저렇게도 울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준 두 편의 영화였다.

[피의 일요일]은 반정부 시위를 경험한 나라 백성이라면?그걸 경험하지 않은 역사를 가진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누구나 공감할 만한 상황을 보여준다.

가톨릭 세력인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영국 정부에게 자신들의 시민으로서의 기본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평화적 시위를 계획하는데 영화는 시작 부분에서 두 개의 기자 회견으로 그 두 세력의 극단적인 대립을 예고한다.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는 북아일랜드 국회의원 이반과 어떠한 시위 세력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영국 진압군측의 기자 회견. 영화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핸드핼드 카메라로 때로는 어지러울 정도로 생생하게 상황을 전달한다.

평화 시위를 달성해 보려는 이반의 입장과 달리, 피가 끓는 몇몇 젊은이들은 돌팔매질로 영국 진압군에게 과격한 진압의 빌미를 제공하고 그 와중에 진압 군인 중 하나는 동료들이 무기도 없는 시민들에게 무차별 사격하는 것을 목격한 뒤 괴로워하지만 결국 진실을 밝히지는 못한다.

군중들은 노래한다. "We shall overcome…" "우리 승리하리라"라는 가사로 우리에게 귀에 익은 노래다. 오랜만에 이런 생생한 정치적 영화를 봐서였을까, 갑자기 날 것의 싱싱함이 느껴지는 음식을 먹은 듯한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이른바 386세대에 속하는 필자가, 너무 오랫동안 생과 사의 문제를 논하는, 진지하고 삶에 밀착된 영화를 비켜서서 각본대로 울고 웃게 만드는 상업적 영화의 재미만을 즐기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까지 하게 되었다면 과장하는 것처럼 들릴까?

국제 영화제가 가진 생산적인 성격 중의 하나는 다른 나라의 영화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정치, 문화적 상황을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일 터이다. 특히 바쁜 일상 속에서 거의 흘려 듣다시피 하는 해외 단신을 통해서는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기 힘든 다른 나라의 정치적 사건들을 영화라는 매체로 들여다 보면 '아, 저 나라의 상황도 우리와 다를 바 없구나'하는 동질감이나 '흠, 저 나라에서는 저런 문제를 저렇게 풀었군'하는 새로운 방향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젊은 날의 정치성이나 진보적 성향을 가슴에 간직한 386세대들에게, 이런 정치적 영화들을 보기 적극 권유한다. 이런 영화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나라가 근, 현대화 시기에 겪었던 일들이 우리만의 일이 아니며 더 나아가서는 '세계화'라는 구호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코카콜라가, 맥도날드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지는 것만이 세계화가 아니라, 지식인들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의 지식인이나 노동자와 연대한다는 것, 그게 바로 세계화의 참뜻 아닐까?

너무 많이 나아갔다. 이 글이 선전선동문(!)이 아니라 오마이뉴스에 실리는 기사라는 걸 잠시 잊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오후에 본 영화 [해피 타임즈]는 정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영화였다. 주인공인 대도시의 한 중년 남자가 꼭 결혼하고 싶은,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그 품에 안기면 정말 문자 그대로 '푹신하고 따뜻할' 것 같은 어느 거구의 여성을 발견한다. 그 여성은 엄청난 금액의 돈을 결혼 지참금으로 요구하고 그는 아무 문제 없다고 큰소리치지만, 실은 수입이라곤 땡전 한푼없는 신세다.

공원의 낡은 버스를 개조해서 공원을 찾는 연인들에게 잠시 시간을 보내다 가는 장소로 제공하고는 돈을 벌 계획을 세우지만 시에서 버스를 철거해 버리는 바람에 그것도 수포로 돌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그 거구의 여성은 전남편의 눈먼 딸을 그에게 맡기며 일자리를 구해달라고 부탁하는데 그때부터 영화는 그 눈먼 딸과 남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훈훈하고도 마음 아픈 사건들로 이어져 간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나이에 내가 바랄 게 뭐가 있겠어. 나는 따뜻한 게 그리워…"하고 말하는 중년 남자의, 사람의 온기에 대한 그리움은 날씬한 여자를 찾지 않고 살이 피둥피둥 찐 여자를 찾게 하지만, 정작 그 남자가 온기를 찾을 수 있었던 곳은 그 여자품이 아니라, 실제로는 '생선처럼 차가운' 그 여자가 박대한 탓에, 바짝 마르고 앞조차 볼 수 없는 맹인 소녀에게서였다. 그 맹인 소녀 또한 아버지에게서 얻지 못한 온기를 이 남자에게 받고 살아갈 기운을 얻게 된다.

아직도 추운 기운이 많이 남아 있는 2월, 이 시점에 이 영화가 한국에 개봉된다면 많은 이들이 훈훈한 온기를 얻어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2002/02/14 오후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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