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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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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강윤주 (서울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

굳이 도시 사회학자들의 주장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지구상 도시의 모습은, 특히 대도시의 모습은 근대사의 아픈 상처가 남긴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쇼케이스라 할 수 있다.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의 도시를 자신들을 위한 일종의 “기능성 도시”로 써먹었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활약상”은 아직도 그 도시들 이곳 저곳에 남아 그곳에 사는 이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숨막히게 한다.
환경재단 그린 페스티벌에서 주최하고 있는 <80일간의 세계일주> 사진전은 이른바 중심부와 주변부 도시의 명과 암을 보여주고 있다는 면에서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진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80여장의 사진 중에 대도시 지역의 사진들만을 뽑아 유심히 들여다 보았던 필자는 기막한 대조를 보이고 있는 선진국과 후진국 도시의 모습에, 과연 이 콘트라스트가 사진을 찍었던 작가들의 정치적 무의식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사진을 선택했던 기획자들의 정치적 무의식에서 온 것인지가 궁금해 졌다. 물론 정답은 그 둘 다일 게다.
먼저 대표적인 사진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방글라데시에서 온 난민들이 캘커타에서 큰 관을 집으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영토 분쟁 때문에 파괴될 대로 파괴된 사람들의 삶이 한눈에 보인다. 지금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남부 아시아의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간 전쟁은 언뜻 보면 그들 내부의 종교 분쟁인 것같이 보이나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들을 부추겨 뒤에서 이득을 챙기고자 했던 강대국 영국이나 중국의 영향이 크다. 전형적인 “고래 싸움”에 터져버린 새우등이, 바로 이 관 속에서 겨우겨우 삶을 영위하고 있는 난민들의, 뼈가 드러나 보이는 앙상한 등가죽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인도 봄베이 빈민가 주변의 송수관 사진은 또 어떤가. 중심부와 주변부, 선진국과 후진국의 모습은 후진국 내부에서도 대도시와 주변부라는 형식으로 그대로 재현되어 도시 중심부 근처에는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밀려난 슬럼가가 포진되어 있다. 이 사진은 대도시 중산층에게 공급되는 수도관 근처에 살면서도 형벌을 무릅쓰고 엄청난 시도를 하지 않고서는 그 수도관에서 단 한 방울의 물조차 뽑아 마실 수 없는 도시 빈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고적하게 앉아있는 견공의 모습에서 얼마 전 보았던 독일 영화 <굿바이 레닌>의 레닌 두상을 연상한다면 지나친 오독일까. 헬리콥터에 “끌려” 흔들흔들 하늘을 날아가던 레닌 두상은 자본주의에 함몰된 현실 사회주의 체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고 사진 속 견공은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하는 유행가 한 구절을 절로 흥얼거리게 해주었다. 동구권의 몰락 이후 우리는 코카콜라와 맥도날드의 물결에 흘러가는, 급격하게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동구권 대도시의 모습을 흔히 보게 되지만 내부적으로 사상적 혼란, 삶 전체에서 총체적 혼란을 겪고 있을 그곳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은 오히려 이 외로운 견공의 뒷모습과 더 닮은 꼴이 아닐까 한다.
그 반면 세계의 도시라 일컬어지는 뉴욕, 뮌헨, 베니스의 모습은 하나같이 건강하고 편안한, 그야말로 “웰빙적 삶”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 국제 마라톤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장은 연간 3만명이 참가한다는 뉴욕 마라톤의 축제적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그 마라톤을 준비하기 위해 센트럴 파크를 날마다 열심히 조깅하는 행복한 뉴요커들이 떠오른다.
또한 독일 뮌헨의 올림픽 스타디움 잔디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은, 한마디로 부럽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선진국 대도시민들의 한가롭고 행복한 한순간을 보여준다.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이들, 발가벗은 아기와 놀고 있는 아버지, 사람은 많으나 분주하지는 않다. 더구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다니, 스타디움은 세계적인 경기할 때만 쓰고 그 다음에는 일반 시민들이 들어갈 수도, 또 들어간다손 치더라도 한가롭게 낮잠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조성되어 있지는 않은 그런 나라에서 사는 나 같은 서울 시민으로서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 이다.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 위한 사진전이 아니다. 언뜻 보기에 아름다워 보이는 도시의 일면이 알고 보면 그 도시 역사의 아픈 상처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선진국 대도시민들의 모습은 부러움의 대상만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 의식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사진 속에서 도시의 정치적 의미 찾기를 해볼 수 있는 <80일간의 세계일주>, 아름다운 사진에만 익숙해져 있던 당신, 떠나라, 지금이 바로 여행을 떠날 때다.

강윤주/독일 뮌스터 대학 사회학 박사. 환경재단 그린필름페스티벌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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