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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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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환경 영화제를 소개합니다.

강윤주 (서울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

“안녕하세요, 저는 올 시월에 처음 개최되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입니다” 라고 누군가에게 소개를 하는 순간 느껴지는 상대방의 반응은 아래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또 영화제를 만든다구요? 이런……
2. 관에서 하는 거겠군요.
3. 환경영화제라, 거 몹시 따분하겠네요.

1번 반응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되도록 많은 영화제가 생겨 시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자리, 끼리끼리 즐거운 축제이며 동시에 타인이 슬쩍 끼어도 별로 티 안 나는 열린 축제의 장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필자의 입장으로서는 영화제 하나가 더 는다는 사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에게 딱히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2번 반응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서 대응해 준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명백히 “관”에서 하는 행사가 아니라 “민”에서 하는 행사다. 그것도 “환경재단”이라는 시민 단체에서 개최하는 축제로서, 환경 운동을 위한 기금을 모으는 일이 그 주 목적인 “재단”의 성격상 관의 지원도 받지만 그 지원 받는 일이 곧 영화제의 성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여기서 덧붙여야 할 말은,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제가 운동성 뚜렷한 영화제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 사족이되 중요한 사족이 될 이 말은 결국 3번 반응에 대한 대답과 연관되는데, 환경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무조건 따분하고 딱딱하다고, 혹은 그 의미를 높이 사줬을 경우에는 진지하고 정치적이라고만 생각하는 이들의 고정 관념을 깨는 일이 첫 회 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의 중차대한 임무라고 여겨진다.
필자는 작년 11월 이래 환경 영화제 네 곳을 둘러보았다. 그 네 곳의 환경 영화제는 각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에코 무브 (Eco Move)”, 일본 동경의 “어스 비전 (Earth Vision)”, 대만 일란의 “일란 환경 영화제 (Ylan Environmental Film Festival)”,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 워싱턴의 “워싱턴 환경 영화제 (Environmental Film Festival in Nation’s Capital)”였다. 단순히 영화를 즐기고픈 관객으로, 영화제를 취재하는 기자로, 포럼을 참관하는 학생으로 많은 영화제에 참석해 왔었으나, 솔직히 말해 작년까지는 세계에 환경 영화제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물론 환경 영화제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혹스럽지는 않았다. 베를린이나 베니스처럼 큰 영화제뿐 아니라 스무명의 관객을 모아두고 하는 작은 규모의 영화제나 이름부터 “요상한 영화제 (Incredibly Strange Film Fest)”인 영화제들도 있는 마당에 환경 영화제가 있다고 한들 뭐 그리 놀랄 일이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정작 놀라웠던 것은 환경 영화제가 외국에 존재할 뿐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수의 환경 영화제가 있다는 점이었다. 거의 매달 세계 어느 곳에서인가 환경 영화제가 열리고 있었고 심지어 오뉴월이나 구시월에는 집중적으로 몇 개씩 열리고 있었다. 세계의 환경 영화제들을 한번씩 다 참관하다 보면 저절로 세계 일주하는 셈이 될 지경으로 그렇게 많은 수의 환경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 점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환경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환경 영화제의 중요성을 해외 환경 영화제 참관 동안 알게 되었다는 것. 둘째, 해외 환경 영화제의 상황, 곧 관객이나 영화들을 보면서 그 나라의 색채와 환경 의식의 수준에 맞는 영화제를 기획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국내의 다른 영화제 프로그래머들도 그렇겠지만 필자는 해외 환경 영화제 참관을 통해 단순히 영화제에 적합한 영화들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어떠한 한국적 특성을 띄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환경 영화제의 짐 중에 하나는 영화제의 성격이 뚜렷하게 계몽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계몽적 테마로 낙인 찍혀온 환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래도 재미있게 만든 영화들을 모으고 그 영화들을 흥미롭게 전시, 소개하여 많은 이들이 계몽에 대한 거부감 없이 축제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필자의 임무일 터인데, 해외 환경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은 이 점에서 다소 덜 고민스러울 수 있을 듯이 보였다.
왜냐하면 해외의 환경 영화제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한결같이 운동적 성향을 감추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열 하루라는 시간 동안 진행되는 워싱턴 환경 영화제의 경우에는 아예 상영관 중 하나가 환경청 건물 내에 있으면서 그 상영관의 주요 관객을 환경청 공무원들로 잡는 경우도 있었으며 그외에도 스미소니언 박물관 산하의 자연사 박물관이나 미국사 박물관 상영관에서 상영을 하여 교육적 목적으로 박물관에 찾아온 이들을 관람객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독일 베를린의 에코 무브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에코 무브에 영화를 보러 온 이들은 대개 환경 전문가 내지 환경 운동 관련자들로, 이들이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는 관객과의 대화가 엔간한 학회 토론 수준을 뺨칠 정도로 뜨겁고도 알차다는 데에 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많은 경우 시간 문제 때문에 표면적이거나 형식적으로 머무르는 다른 많은 영화제들과 견주어 볼 때 이런 심층적 토론 시간은 상당히 깊은 인상을 주었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와 마찬가지로 첫 회 환경 영화제라는 점에서 보고 배울 게 많았던 대만의 일란 환경 영화제는 계몽적 색채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많았다. 대만의 수도 타이페이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도시 일란에서 열린 이 영화제는, 집행위원장 제인 유 (Jane Yu)의 광범위한 네트워크 때문인지 첫 회 영화제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다채로운 게스트들이 초청되어 왔다. 이곳에서는 환경 영화제가 줄 수 있는 재미에는 그 영화제가 상영되는 장소의 환경적, 자연적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제가 열리는 장소인 일란은 작지만 곱고 아름다운 도시였으며 호수 위에 영화 스크린을 띄워 놓고 했던 야외 상영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근사했다.
다시 해외 환경 영화제의 운동적 성격으로 돌아가보자. 이 운동적 성격의 영화제라는 말이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여야 할 이야기가 있다. 이 영화제들이 운동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곧 영화제의 관객이 지극히 적었다는 말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매우 대중적인 성격을 지닌 영화제들이 불러 모으는 관객수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은 수이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또 지극히 적은 수의 관객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워싱턴 환경 영화제의 경우 해마다 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으며 인구 60만의 도시에서 특정 테마를 가진 영화제에 이 정도 관객수는 결코 적지 않은 수치라고 생각된다.
이 점은 곧, 그 나라 관객이 환경에 대해 매우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많은 경우 흰머리 희끗희끗한 장년층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허리 꼿꼿이 세우고 앉아 열심히 관전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도 버쩍버쩍 손을 들어 촬영 당시 상황이나 감독의 의중을 묻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었다. 또한 장년층만이 아니라 자녀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은 자녀들이 특정 장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가 주는 환경적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는 등 한 마디로 말해 “환경” 영화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이러한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던 점 하나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주 공략 대상을 가족으로 삼아야겠다는 것이었다. 국내에 많은 영화제가 있지만 가족 전체를 아우르는 영화제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기에 더없이 좋은 화두가 바로 환경 아니던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넉넉히 품는 자연처럼 서울국제환경영화제도 가족 구성원 모두를 담는 영화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 관객의 환경 영화에 대한 관심도는 어느 정도나 될까? 일단 희망적으로 보이는 점 중 하나는 영화 생산자들, 곧 많은 영화 감독들이 환경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제 관련하여 영화 감독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많은 감독들이 의외로 환경에 대해 표면적 차원의 관심이 아닌, 오랜 시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온 듯한 심도 깊은 의견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기는 영화 촬영 때 발생하는 심대한 환경 피해를 생각해 보라. 영화 감독들은 생산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환경 오염 문제와 만나고 있으니 그들이 환경에 대해 걱정하는 것도 기실 당연한 일이다. 한가지 더: 조만간 “환경을 사랑하는 영화인들”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용자들이 어느 정도 환경 영화에 관심을 보일지는 올 시월 첫 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수용자 없는 생산의 의미는 아무래도 떨어지는 법이므로 환경 영화에 관심을 가진 영화 감독들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이를 흥미 있게 봐주는 영화 관객들을 확보하는 일일 터이다. 환경 영화가 하나의 제대로 된 장르로 자리잡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필자로서는 그런 탓에 책임감으로 어깨가 묵직하고 지금도 불철주야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3번 반응을 보이셨던 여러분들, 가을에 와서 한번 보시라, 그리고 과연 정말로 따분했는지 진솔하게 말씀 주시라. 생산적 비판은 언제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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