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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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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삼성 사외보 <함께 사는 사회> 2004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여자는 세상의 미래다

강윤주

여자가 남자의 미래임은 이미 홍상수 감독이 만천하에 공표했거니와 가까운 예로 내 직장 상사가 다섯 살배기 아들과 나누는 대화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서연아, 너 알지? 여자애들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왜 엄마?” “니가 결혼할 때쯤 되면 남자가 여자보다 턱없이 많아서 매력 없는 남자들은 평생 결혼도 못 해요!” 예리한 수술 메스에 잘려져 나간 수많은 선배 여자 아기들은 살아남은 후배 여자 아기들에게 이렇듯 남자들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바통을 쥐어주고 갔다.
이제까지의 세상이 남성 중심으로 돌아갔음을 인정한다면 여자가 세상의 미래가 될 것임은 이 공식을 통해 자동으로 도출된다. 그렇지만 이는 단순히 위에 언급한 생물학적 희소성의 원칙에 근거한 주장이 아니라 현실, 아니 아직도 “대한 건아 만세”가 히트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열악한 풍토에서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에 근거한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이 NRG 라는 그룹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소름이 끼친다. 남자는 “건아”고 여자는 “열녀”이며 남자는 “아무 생각 말고 앞으로 앞으로” 가면 되지만 “한국 여자”는 “미모 외모”로 “제일” 이란다.)
먼저 떠오르는 인물로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있다. 그녀가 제일 인기 있는 정치인 대열에 끼어 있다는 것이 그녀의 그 매혹적인 - 동그란 눈에 다부진 입매, 그녀는 정말 매력 있다 - 외모 때문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돼먹지 않은 젊은 검사들 앞에서도, 검찰총장 앞에서도 결코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싸웠던 투지 때문인가? 그것 때문만도 아니라고 본다. 그 당당함 뒤로 슬금슬금 언론 보도를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던, 그녀가 “허무주의적 기질을 가진 인문주의자”이며 스스로를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정체화 했다는, 곧 여성적 자질 또한 고루 갖춘 인물이라는 소식이 없었다면 그녀는 단지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에서 성공적으로 남성화해 살아남은 여자로만 보였을 것이다.
정계에 제2의 강금실, 제3의 강금실이 등장하리라 추측해 볼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들이 기존 정계 고리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 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 동안 여자들이 정계에 자리 잡기 힘들었던 점 또한 바로 이 고리의 부재에 있었는데, 이 고리 없음으로 인한 자유로움이 낳을 수 있었던 파격적 정책은 국민들로부터 대환영을 받았고, 이 대환영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많은 “금실즈”가 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기대해 보는 것이다.
몇 가지 종목을 제외하고는 남자들의 독점 영역이었다 할 수 있는 스포츠계는 또 어떠한가. 연일 세계적으로 성가를 올리고 있는 골프 선수들은 한국 남자들이 아닌 여자들이다. (골프 없으면 정치도 안 되고 비즈니스도 안 되어 남자라면 무조건 골프를 쳐야 하고 재산이 불과 30만원밖에 안 돼도 골프장에는 5백만원짜리 나무를 심는 전 대통령도 있을 정도로 남자들 사이에서 골프가 대중화된 마당에, 왜 정작 골프 잘 치는 남자 선수들은 없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골프라는 스포츠가 보여주는 특성은 여자가 왜 세상의 미래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첫째, 골프는 힘보다 기술이 중요한 스포츠다. 물론 장시간 걸을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지만 여기에서는 체력 그 자체보다 체력을 적당히 안배할 줄 아는 지혜가 더 중요하다. 둘째 정해진 시간 안에 매 홀의 지형적, 기후적 상황에 맞춰 공을 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대단한 두뇌 플레이가 필요하다. 셋째, 힘을 넣는 것보다 힘을 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골프 초보자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몸에 힘을 빼고 집중하라는 말을 듣는 것은 그래야만 공을 제대로 맞출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 수컷을 이기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어깨와 목에 힘을 주고 나가야 “먹고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학습해 온 남자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영화계에서도 여성들만의 독특한 시각은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배우로서는 전지현 파워, 제작사로서는 심재명 대표, 이외에도 영화 평론계와 감독 등 수많은 여성들이 영화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혔지만 영화계 안에서도 가장 힘든 생존 싸움을 하고 있다는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여성들의 시각은 더욱 빛난다. 환경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꽤 많은 다큐멘터리 작가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환경에 대한 시각 역시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의 시각이 상당 부분 기존의 환경 운동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면 여성의 시각은 여태까지 주류 환경 운동가들이 보지 못하고 있던 틈새 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산모의 허가도 받지 않고 탯줄로 약을 만들어 파는 이들과 환경 문제를 연관시켜 생각한다든지 아이들 학교 시설의 환경 문제를 감시한다든지, 먹거리, 입거리 등 여성들이 가정과 자녀를 지키면서 생래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거대 담론에 묻혀 무시되어왔던 우리 일상의 문제, 우리 피부의 문제를 섬세하게 하나씩 하나씩, 참을성있게 들추어가는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시선은 여자가 세상의 미래임을 보여주는 또하나의 증거다.
여자가 세상의 미래라고 해서, 그대, 남자들이여, 두려워 할 것은 없다. 남자가 세상을 주도해 왔던 때와 달리 여자들은 남자들을 배제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기꺼이 그대 남자들과 함께 세상을 살 용의가 있으니, 괜한 시기심으로 분란을 일으키거나 제풀에 나가떨어지지 말라.

강윤주는 잡지사 <샘이깊은물> 기자로 일하다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 대학에서 영화 사회학을 공부했고 현재 올 시월에 처음 열리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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