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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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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된 사랑의 초상, <파 프롬 헤븐>
동성애와 흑인과의 사랑, 누가 더 나쁜가
 
강윤주 기자  
        


▲ 영화 <파 프롬 헤븐>의 포스터
ⓒ2003 해당저작권자


토드 헤인즈 감독의 <파 프롬 헤븐(Far from heaven)>은 55년 더글러스 서크 감독의 영화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All that heaven allows)>을 리메이크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더글러스 서크의 원작을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문할 것이다. ‘아니 토드 헤인즈 감독 같은 사람이 50년대 미국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를 리메이크하다니?’

더글러스 서크는 사실 이름난 멜로드라마 감독이다. 그의 작품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긴 하지만 <벨벳 골드마인>의 토드 헤인즈 감독이 리메이크를 할 만한 영화인가를 따져보았을때는, 다소 ‘따분한’영화처럼 여겨질만하다.(그러나 서크의 영화 역시 후에 정신분석학적 영화 연구에서 재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 영화는, 그 차이를 두 감독의 개인차가 아니라 시대적 변화로 생각해 본다면 매우 흥미있는 일이 될 수 있을, 몇가지 설정상의 차이점을 보인다.

먼저 더글러스 서크 영화에서 주인공은 두명의 자녀를 가진 중산층의 미망인과 그녀의 집에서 정원을 가꾸는, 열다섯 연하의 근육질 정원사(록 허드슨이 이 역을 맡았다.)이다. <파 프롬 헤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남편은 아예 등장하지 않았고, 정원사 역시 백인이었다.

<파 프롬 헤븐>에서 등장인물인 남편은 동성애자이며, 중산층 부인이 사랑하게 되는 상대자는 흑인 정원사이다. 50년대 중반에는 감히 다루지 못했던 동성애적 코드와 인종차별적 코드가 2천년대에 등장한다는 것은 역사적 진보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두 영화가 시대를 달리하더라도 공통적으로 이중삼중의 억압을 받는 주인공은 역시 중산층 부인이다.

중산층 부인 역을 훌륭히 소화한 쥴리안 무어의 이미지 위로 어쩔 수 없이 얼마 전 개봉됐던 <디 아워스>의 로라가 지나간다. 로라는 자살까지 감행하려했던 어두운 캐릭터인 반면, <파 프롬 헤븐>의 캐시 휘태커 부인은 사교계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완벽한 매너와 미모를 갖춘 여성이다. 또한 집안 살림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며 남편의 동성애 사실로 절망하는 가운데, 흑인 정원사 레이먼드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는 능동적 여성으로 나온다.

한편, 50년대 미국 중산층 여성인 캐시 휘태커 부인 역을 맡은 쥴리안 무어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적격의 캐스팅이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어떤 상황에서도 재빨리 자신을 추스리고 지어내는 그 미소! 진심어린 따뜻함과 배려가 가득 담긴 그 미소는 정말이지 백만불짜리 감이다.


        
▲ 부인 캐시와 남편 프랭크 휘태커역의 데니스 퀘이드
ⓒ2003 해당저작권자


이 완벽하고 완벽한 주부 캐시는 억압당하면서 동시에 억압하는 인물로, 모순적인 구조 한 가운데에 서 있다. 그녀는 남편의 동성애 치료가 시작된 뒤에도 성공적인 파티를 열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정신의 반은 캐터링한 음식이 잘 나올까에 가 있고 평소 자신의 신념과는 달리 “흑인과의 평등은 말이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파티 손님의 말에 동의도 한다.

미국 중산층이 공유하는 억압적 이데올로기(집 잘 꾸미기, 근사한 파티 열기 등이 여성 삶의 최고 가치라는) 아래 '잘 살고 있다'고 믿었던 캐시는 마음을 열고 진심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 레이먼드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가 피부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캐시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버림받는 고통을 당한다.(사람은 자신이 속해 있다고 믿었던 집단에서 이 얼마나 간단히 추방당할 수 있는가!)

동시에 캐시는 억압을 재생산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 화목한 가정의 아이들은 대부분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지만, 정작 그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아버지와의 화목한 한 때는 가지지 못한다. 아버지는 늘 바쁘거나 피곤하기 때문이다. 캐시는 남편을 귀찮게 하려는 아이들에게 늘 강력한 훈육적 태도로 일관하며, "이렇게 해라", "이건 하면 안 된다"는 말로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아이들을 괴롭힌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이 덩달아 숨이 막힐 정도다.

반면, 남편의 동성애적 취향은 의외로 너그럽게 용납한다. 요즘처럼 커밍 아웃 상황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치료만 하면 나아질 수 있다"고 부인이, 의사가, 이웃이 생각해준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는 동성애는 하나의 ‘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치기 어렵지만, 이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심지어 개인의 도덕관과도 상관없는 '병'인 것이다. 주변인들은 본인이 치유하려는 의지만 보인다면 "우리도 당신을 존중하겠소" 라는 너그러움까지 보인다. 그러나 그런 반응은 동성애 주인공이 한 회사를 이끄는 중견 간부 남자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 주인공 캐시역의 쥴리안 무어와 정원사 레이먼드역의 데니스 헤이스버트
ⓒ2003 해당저작권자


동성애와 인종을 뛰어넘는 사랑 중 더 나쁜 건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부인 캐시와 정원사 레이먼드가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마을의 소문을 듣고 득달같이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태도에서 분명하게 제시된다.

그 자신, 어두운 사무실에서 다른 남자와 키스하고 있다가 부인에게 들켜 동성애 치료를 받고 있는 남편은 아내에게 소리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수십년간 당신과 가족을 위해 일해온 건 다 뭐란 말이야?”라고.

그가 분노하는 건 아내가 바람 피웠다 라는 사실보다 ‘니그로’와 그렇고 그렇다는 소문을 나게 해 그의 명예를 깎아 먹었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부인의 흑인과의 관계에 대한 소문은 흡사 그녀가 수간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말로 들리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아파서 다른 남자를 찾은 것이고, 아내는 제정신을 가진 상태로 바람 피운 것이니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토드 헤인즈가 시대 상황을 잘 살려내기 위해 특별히 신경썼다는 중산층 마을의 풍경과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악은 이 영화에 색다른 빛깔을 부여한다. 다소 거슬릴 정도로 자주 나오는, 크레인을 이용해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이동하며 잡는 장면장면들과 화면 가득 펼쳐지는 알록달록한 나뭇잎들의 화려한 향연은 가끔씩 아찔한 현기증을 주기도 한다.

또 여성들의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을 강조해 만든 의상들의 디자인과 색감 또한 시대적 분위기를 엿보게 하는 이 영화의 볼거리 중 하나이다.

피부색을 뛰어넘는 사랑의 불가능성에 절망하는 주인공들을 보고 있노라니, 최근까지 백인과 흑인의 사랑 혹은 해피 엔딩 장면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할리우드의 상황이 생각났고, 그 현실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못다한 사랑보다 더욱 절망스럽게 느껴졌다. 50년이 흘러갔어도 이 시대는 아직 완벽하게 그 담을 뛰어넘지 못했으므로….


2003/05/22 오후 4:15
ⓒ 2003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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