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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보다 더 좋은 게 뭘까?
성인을 위한 성교육 영화 <베터 댄 섹스>(Better than Sex)
 
강윤주 기자  


        
▲ 영화 <베터 댄 섹스>의 포스터
ⓒ2003 상상


한 두해전, <화성남자 금성여자의 침실 가꾸기>라는 책이 공전의 히트를 쳤다. 제목만으로는 무슨 SF 소설인가 하고 오해하기 십상일 이 책은 화성과 금성에서 온 외계인들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남자와 여자의 성생활에 대한 조언서였다.

새삼스럽게 이 책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제 소개하려는 영화 <베터 댄 섹스>(Better than Sex)가 이 책에 부록으로 함께 나오는 시청각 매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시 말하자면 '성인을 위한 성교육 영화'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원 나잇 스탠드'를 즐기고자 했던 두 남녀 조쉬와 씬은 처음 작정했던 바와는 달리 사랑에 빠진다. 이게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너무 짧다고? 하지만 줄거리로 더 내놓을 이야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거리(!)는 풍성하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 영화는 많은 부분 <포르노 그래픽 어페어>라는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두 영화 모두 주인공 남녀를 인터뷰하는 형식이라는 면에서도 그렇고 두 남녀 첫 만남의 바탕에 깔린 생각이 '묻지마 섹스'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포르노 그래픽 어페어>에서 포르노를 기대한 사람이 있다면 무척 실망했겠듯이, <베터 댄 섹스>에서 관계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성찰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실망하게 될 터이다. 그렇다고 <베터 댄 섹스>에 질펀한 섹스만이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한마디로 색색거리고, 끙끙거리며, 다양한 체위가 소개되고, 아마도 좀 과하다 싶어 영화를 소개하는 광고지에는 '립서비스'라고 표현했나 보다고 짐작되는 '오랄 섹스'도 나온다. (물론 이 장면은 상당히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전혀 야하지 않다. 그렇다고 건조한 것만도 아니다. 절정에 오르기까지, 절정에 올라서 미소짓는 그들을 보는 우리는 이상하게도 일종의 인간애를 느낀다. 다소 비관적인 사람이라면 에그 저 쾌감을 느끼기 위해 저렇게 애쓰나, 하고 안스러워할지도 모르고 태평한 사람이라면 짜식, 기분 좋겠네, 나도 해 봐서 알아, 정도의 동지애쯤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 조쉬역을 맡은 데이빗 웬햄과 씬역의 수지 포터
ⓒ2003 상상


이런 장면들에서 성적 흥분이 아니라 인간애를 끌어내는 데에 배우들의 외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말은 해두어야겠다. 데이빗 웬햄과 수지 포터는 사람에 따라서는 미남미녀라고 볼지 모르겠으나 요즘 스크린을 휩쓰는 표준형 헐리웃 미남미녀 배우는 아니었다.

특히 수지 포터는 온 몸과 얼굴이 주근깨투성이에다 딱 벌어진 어깨와 위풍당당한 몸매까지 가늘가늘하면서 섹시한 여자와는 거리가 멀게 나온다. 그런 외모에 걸맞게 영화 속 그녀는 대단히 솔직하다. 정사 후의 시장기 때문에 그녀의 냉장고에서 뭔가 먹을 것을 찾다가 “바이브레이터”를 발견한 조쉬가 이거 뭐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난 차가운 게 좋아”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솔직하고 당당한 여자 씬에 비해 남자 주인공 조쉬가 순간순간 내리는 결정들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사흘 뒤에는 런던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상황 설정이 관객에게 그의 모든 무리한 결정을 용납해 달라고 사정하기는 하지만, '원 나잇 스탠드'는 하룻밤으로 끝나야 한다는 평소의 신조대로 씬의 집을 나섰다가 집 바로 앞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어렵게 그녀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하고는 다시 그녀 집으로 돌아가 하루를 더 지내는 것이나 옛 여자친구와의 상처를 씬이 건드렸다는 것때문에 화가 나서 집을 박차고 나갔다가 또다시 제풀에 돌아오는 것이나, 이 끊임없는 귀화 본능의 동기가 관객들에게 상당히 약해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나 또 여러 가지 다른 면에서나,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성에 관한 허접한 환상을 깨고 솔직한 섹스, 즐거운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위해 남녀에게 공평한 장면 배분을 위해 노력한 것은 엿보이나 (이를테면 두 주인공말고 그들 친구들이 성에 대해 대답하는 장면들도 남자 한번, 여자 한번 하는 식으로 편집했다) 아무래도 여자들의 성 담론이 훨씬 더 돋보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여기서 ‘아무래도’라고 쓴 것은 아무리 섹스에 관한 한 남녀 평등이 우리보다 앞서간다고 하는 서양이라도 여자의 섹스에 관한 한 일정한 선입견이 남아 있는 게 사실인지라 ‘억압받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더 직설적이고 유쾌했다는 인상 때문이다.)

끝으로 다시 한번 그 베스트셀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이 책이 공전의 히트를 칠 수 있었던 이유는 실제로 많은 남자 여자가 침대에서 상대방을 어디 다른 별에서 온 인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남자와 여자의 몸 구조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배려하지 않으면 함께 만족할 수 없다 라는 이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 현실에 적용하기가 그렇게 힘든 것인지…

영화 속에서 남녀의 다른 몸 구조를 아주 상징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어 소개한다. 관계 중에 있는 씬과 조쉬, 씬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참아줘’ 하며 속으로 애원하고 있고 조쉬 역시 참느라 애쓰고 있다. 이 장면에서 조쉬는 ‘밀가루 00 그램, 설탕 00 그램, 계란 0개’하고 빵 굽는 레시피를 중얼거리며 참을 대로 참고 있는데 결국 씬이 원하는 만큼 기다려주지는 못했다. 한숨을 푹 내쉬며 미안해하는 조쉬, ‘더 이상 재료가 생각나지 않는 걸’ 하는 그의 말에 관객은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다.

영화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섹스보다 더 나은 것은 무엇일까? 공감이라고, 배려라고, 공감과 배려에 가득 찬 섹스라고, 호주 감독 조나단 테플리츠키는 말하고 싶은 듯하다. 산업 규모상 비교가 되지 않는 탓에 러셀 크로우나 케이트 블랑쉬와 같은 배우들을 배출하고도 늘 헐리웃에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호주 영화 산업계에서 태어난, 헐리웃의 섹스 코미디와는 다른 신선한 색조의 영화를 만든 이 감독이 얼마나 호주 영화계에 머물러 있게 되려나 궁금해진다.

5월 23일 개봉될 이 영화는 18세 이상이면 남자건, 여자건, 외계인이건 누구나 볼 수 있다.

2003/05/10 오전 11:31
ⓒ 2003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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