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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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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외면하면 십리 못가 발병나오
6번째 리메이크된, 디지털 영화 시대의 무성 영화 <아리랑>
 
강윤주 기자  

 
        
▲ 영화 <아리랑>의 포스터
ⓒ2003 시오리


시기적으로 상당히 뜬금없이 느껴지는 영화 한 편이 나왔다. 1926년 나운규에 의해 처음 제작되었을 때 같은 시기에 개봉되었던 미국 영화들을 다 제치고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고는 하나, 그 여파로 무려 5번이나 리메이크 되었다고는 하나 2003년 이 시기에 이 영화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이 뜬금없는 영화는 이제 바야흐로 6번째 리메이크 기록을 세우는 <아리랑>이다.

영화는 아시는 바와 같이 일제 시대 네 남녀의 애틋한 관계를 중심으로 나라를 빼앗긴 애통절통한 조선 국민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경성에서 공부하던 대학생 영진은 독립 운동을 하다 '왜놈'들에게 잡혀 고문당하던 끝에 정신나간 사람이 되어 집으로 내려온다. 그를 사모하던 명순의 마음은 찢어지지만 날마다 그의 간호에 여념이 없고, 영진의 여동생 영희는 영진의 친구인 현구가 내려올 방학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막상 내려온 현구의 모습에서 아들의 과거 멀쩡하던 모습을 떠올리는 영진의 아버지는 가슴이 쓰라리고… 한편 영진의 아버지에게 빚 독촉을 하며 쫓아다니는 기호는 마을 유지 천가네 아들로 실상 시커먼 속마음은 영희에게 있다.

어느날 마음먹고 영희에게 달려드는 기호를 실실대며 바라보고 있던 영진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기호를 죽이겠다며 낫을 들고 그를 쫓아간다. 풍년을 기원하는 잔치가 열리던 마을은 갑자기 피의 향연을 벌이게 되는데….

예상 가능한 인물들, 예상 가능한 이야기니 안 봐도 뻔하겠다고 섣불리 판단할 분들의 소매를 붙잡으며 이 처자, 한 마디만 속삭이고 싶다.

'이 영화, 무성 영화예요!'

무성 영화에는 당연히 변사가 따라야 한다. 최주봉은 특유의 신파성 짙은 목소리로 변사적 끼를 이 영화에 유감없이 풀어놓는다(최주봉은 이미 <번지없는 주막>에서부터 <홍도야 울지마라>까지 악극 공연에는 빠지지 않는 감초 같은 존재로 호가 난 터다).

흑백 화면에 변사까지, 게다가 18프레임으로 찍어 다소 우습게 느껴지는 배우들의 동작은 관객들의 머리에 또 한번 커다란 물음표를 떠오르게 한다. '아니 삼차원 동작까지 디지털로 보여주는 이 첨단 기술의 시대에 웬 무성 영화?'(이 영화의 개봉 시기인 5월 중순은 마침 <매트릭스 2>가 개봉하기로 되어 있어 이 콘트라스트는 더욱 빛난다).

얼마 전 개봉된 영화 <그녀에게>에 삽입된 무성 영화가 형식은 고전적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기상천외하고도 포스트모던하며 초현실주의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이 무성 영화 <아리랑>은 형식, 내용 모두에서 상당히 고전적이다. 고전적이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울트라 초절정 기술 시대에 고전을 되살려보자'라고 생각한 제작자와 감독의 용기와 배짱일 것이다.

분명, 2003년 한국의 극장에서 무성 영화를 보는 기분은 색다르다. 모두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는 신인 배우들에게는 힘겨웠을, 무성 영화 특유의 어색하고도 과장된 연기들은 때로 닭살스럽기도 하지만 매끈하고 솜사탕 같은 요즘 멜로 드라마의 표정 연기에 비해서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 표정 위에 쳐주는 변사 최주봉의 내레이션하며!

이 영화의 흥행을 위해 중요한 점 중 하나는 관객들이 얼마나 이 영화의 이야기를 지금 현재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이다. 나운규 감독이 처음 이 영화를 보여주었던 1926년은 조선의 국민들이 영화 속에서처럼 일제 순사의 발길질에 휘둘리며 살아야 했던 시기였다.

그들은 영화 속 순사를 현실의 순사처럼 미워했을 것이며 영화 속 마을 사람들을 자기 자신인 양 동일시하고 제 설움에 못이겨 엉엉 울었을 것이다.

일제의 식민 지배는 직접 겪어보지 못했지만 우리의 딸들이 주둔군의 전차에 깔려 죽어도 그들을 처벌 못하고, 명분조차 없는 전쟁에 우리 청년들을 파병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은 영화 속 배경과 우리의 상황을 동일시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는 한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알레고리 기재가 작동되기에는 영화가 던져주는 단서들이 너무 적다. 그 단서의 부재가 관객을 엉엉 울지 못하게 하는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게 섣부른 나의 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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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만든 영화"         
 
  

▲ 시사회 직후 열렸던 기자회견 모습.
ⓒ이수진

이 영화는 북한에서 동시 개봉된다는 사실 때문에 미리 유명해지기도 했다. 5월 23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 개봉하기로 북측과 합의되어 있다는 이 영화는 이미 지난 10월, 제작이 완료된 후 평양에서 시사회를 가졌다. 시사회 반응 및 영화 제작 관련된 이야기를 시사회 직후 있었던 기자 회견에서 들을 수 있었다.

- 북한에서는 무료 상영된다고 들었는데?
제작자 이철민: 양국의 체제가 너무 틀리고 상황이 다른 탓에 이해하기 좀 힘들 수 있겠지만, 북한의 현재 실정상 무료 상영을 하지 않고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기가 힘들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오래 상영하는 게 우리가 바라는 바다.

- 시사회 반응은 어땠는지?
이철민: 보신 바와 같이 영화 후반부에 갑자기 칼라로 바뀌는데 북한 사람들은 칼라 화면에 이제 막 익숙해졌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었던 것 같다. 관객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북한 시사회에서는 최주봉씨의 내레이션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직접 양택조씨가 변사 역할을 했는데 변사에 따라 영화색이 달라진 것 같다. 최주봉씨는 좀더 매끄럽고 양택조씨는 다소 투박하고….

- 모두 신인 배우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
감독 이두용: <아리랑>이 당시에 크게 흥행했다고는 하지만 1926년에 나운규 감독의 영화를 본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뒤로 만들어진 <아리랑> 리메이크는 대부분 이름난 감독들이 이름난 배우들을 기용해서 초대작으로 만들었는데 성공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오히려 거꾸로 이름없는 배우들로 만들어야 이야기 자체의 감동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처음 이 영화를 만들자고 했을 때 이미 몇번이나 만들어진 영화를 다시 만들자고 해서 거부했었다. 그러나 몇번이나 만들어졌다고 해도 내 창작력을 투입할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있는 것이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나운규의 <아리랑>을 본 이는 거의 없어 원작으로부터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수락했다.

기획자인 김갑의씨는 이 영화를 "미친 놈들이 (유명한 스타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만든 영화"라고 간단히 요약했다. 그러나 그는 "기본적으로 서민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같고 그 삶에서 얼마나 재미를 캐내어 보여주느냐가 영화의 승패 여부"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이 영화가 평양에서 처음 시사회를 가졌던 작년은 나운규 탄생 백주년이 되는 해였다고 한다. 또 한국에 영화라는 매체가 들어온 지 백년이 되는 때이기도 했다. 민족의 얼을 어떻게 정리해 낼 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만들었다는, 민족의 얼 정통 감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감독(이두용 감독의 대표작들은 <피막>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뽕> 등이다.)과 이제 105번째 기획자로 이름을 올린다는 노련한 김갑의씨가 이제 처음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와 제작자, 그리고 신인 배우들과 손잡고 만든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특히 젊은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자못 궁금하다. / 강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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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29 오후 9:18
ⓒ 2003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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