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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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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어도 좋아>를 보기 전에 두 주인공을 무대 위에서 먼저 볼 수 있었다. 일흔셋의 박치규 할아버지와 일흔둘의 이순예 할머니께서는 이른바 “커플룩”처럼 분홍 한복을 차려 입고서 여기저기서 정신 없이 후래쉬 터뜨리는 기자들 앞에 수줍게, 그러나 환한 낯으로 서계셨다. 인사말 한 마디 하시라는 주문에 "일기도 안 좋은데 왕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말씀하신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는 "용감하게 봐주세요"라는 다소 아리송한 말씀으로 입을 여시더니만, "인생을 즐기세요. 사랑이란 다듬이 돌로 다듬듯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라고 기운차게, 관객들을 "격려"하셨다.

시인 정호승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 혼자 밥을 먹는 일은 쓸쓸하다"고 했거니와 사람, 그것도 혼자 사는 노인의, 코 훌쩍대며 라면 먹는, 등뼈 드러나 보이는 뒷모습을 보는 일은 정말 쓸쓸한 일이다. 영화 처음 몇 컷을 통해 보여지는 박치규 할아버지의 외로운 일상은 그러나 명랑 쾌활하게 흘러갈 영화의 주조를 밝히기 위한 장식에 불과하다. 바로 그 몇 장면 뒤 마치 요즘 유행하는 플래쉬 카드의 그림처럼, 두 냥반이 나란히 벤취에 앉아계시고, 박치규 할아버지는 다소 치기어린 (혹은 치규어린?) 어조로 할머니에게 말을 건다. "할머니, 정말 예쁘네요. 이렇게 예쁜 할머니 옆에 앉아있으니 영광이네~" 이 장면에 나오는 장난기 어린 배경 음악은 또 어떻고…

영화는 길지 않다. 러닝 타임 67분의 이 영화는 그 짧은 길이만큼이나, 이야기 보따리도 뭉텅뭉텅 그저 몇 개일 뿐이다. 두 사람이 만나서 어떤 과정을 거쳐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아예 생략되고, 할아버지가 방을 쓸고 닦는 장면이 나오더니만 갑자기 공원 벤취에서 만났던 할머니가 장구와 옷 보따리 들고 사뿐사뿐 할아버지 집으로 오는 장면으로, 그리고 두 사람이 혼인 서약하는 장면으로 곧장 넘어간다. 영화의 영화 제목 "Too young too die" 처럼, 두 사람이 사랑하는 장면만 보여주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듯이...

달력에 두사람이 사랑을 나눈 날을 표시하고, "낮거리" 한 날은 특별한 표시가 하나 더 들어가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던 두 사람은 할머니의 다소 긴 외출로 잠시 싸우기도 하지만 그 외에 모든 장면들은 두 사람이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여주는 구체적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너무 큰 기대 탓이었는지, 솔직히 영화적 완성도면으로는 실망이었다. “영화적 완성도”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서는 논문 한편 쓸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 내가 말하는 “영화적 완성도”의 부족은, 이 영화에서 그 어떤 긴장감이나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알쏭달쏭함이나 물밀듯이 밀려오는 감동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영화는 무덤덤하게 흘러가다간 잠시 미소짓게 하고, 또 다시 무덤덤하게 흘러간다. 두 노인의 성행위 장면은 신문에서 너무들 떠들어댄 탓에 특별히 충격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저 장면들이 왜 저리자주 반복되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 부호만 떠올랐다. (헐리웃의 상업 영화에서 줄거리와 상관없이 섹스 장면을 많이 넣을 때 기대하는 그런 효과를 얻지 못할 것은 불 보듯 훤한데 말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의 성행위 장면에서보다 할아버지가 그 더운 여름날, 살아있는 수탉을 한 마리 사와서 땀 뻘뻘 흘리며 감기 몸살로 앓아 누운 할머니를 위해 삼계탕을 끓이고 살을 발라 먹이는 장면에서 오히려 더 큰 감동을 받았다.

노인들의 섹스는 아직 늙지 못한 우리들에게는 큰 놀라움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그들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오로지 섹스를 통해서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함께 노래를 하며, 함께 글을 배우며, 함께 닭 한 마리를 나누어 먹으면서도 그들은 살아있는 순간순간을 확인할 것이다. 젊은 날에도 즐길 수 있었던 섹스보다 젊은 날 미처 나누지 못했던 노래와 글과 닭 한 마리를 통해서 더욱 살아있음을 절감하고 감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섹스를 통해 더욱 분명하게 전해지는 감동은 있었다. 성행위를 할 때 보게 되는 상대방의 벌거벗은 모습, 옷만을 벗은 것이 아니라 평소 남의 눈을 의식하여 입고 있던 체면이나 가식까지 벗은 모습은 늘 어딘가 감동적인 데가 있지 않나. 본능에 충실해서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까지 열심히 기어오르는, 그리고 절정에 도달하여 흥분된, 또한 노인들일수록 절정이 지나가고 난 뒤 맞게 되는 완전 기력 소모의 순간, 그 순간 얼마나 상대방이 가엾게 느껴지는지를, 박진표 감독은 롱테이크가 아니라 롱롱테이크라 해야 옳을 긴 컷을 통해 속속들이 보여주었다.

이 영화의 18세 이상 등급 허용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영상물 등급 위원회에 감사드린다. 그들의 그 노고로 말미암아, 평자들 사이에서만 그 “영화사적 가치”가 운운되고 묻히고 말았을지도 모를 이 한편의 영화가 이제 대중적으로도 빛을 보게 되었다. 영상물 등급 위원회도 이번에 절감했겠지만, 세상에는 참, 자기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감추려 감추려고 했던 “추한” 노인들의 성기와 성행위 장면이 세상 빛에 훤하게 드러나는 데에 자신들이 일조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영화 전문 리포터 강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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