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자료를 다른 곳에 사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영화에 나오는 음악도 아닌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이 글의 백뮤직으로 깔아놓은 이유는 이렇다. 사실 영화 소개에 노래 가사를 덧붙인다는 걸 유치하다고만 생각해왔던 나이지만, 영화 “버스, 정류장”을 보는 내내 내 머리에, 아니 머리보다는 가슴에 앵앵거렸던 이 노래의 가사를 소개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영화에 대한 내 느낌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유치한 짓을 해보기로 했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나서, 혹은 적어도 영화를 보고 나서 내 느낌에 공감할 수 있다면 내게는 작은 기쁨이 될 터이고…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 “버스, 정류장”을 보다 보면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반면에, 영화 중간 어느 한순간, 불이 반짝, 켜지는 것 같은 느낌도 전해준다. 탁 풀리는 맥과 반짝 켜지는 불빛 때문에 이 늦가을 정취에 딱, 인 영화 “버스, 정류장”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
이 영화에는 우리가 흔히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은 모두 대사 한두 마디로 간략히 처리된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진술하는 이나 듣는 이나 크게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신문 지상에 오르내릴 수 있을 만한 큰 사건들은 대사 속에서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여지고, 이 영화에서 딱 두번 나오는 대성통곡은 한번은 정작 사건이 지나간 뒤에, 또 한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쏟아져 나온다.
사건 중심의 줄거리 소개보다는 인물 중심의 줄거리 소개가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바로 그 이유에서다. 주인공 재섭은 대학 때 글도 잘 쓰고 자기 주장도 분명한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현재 시점에서는 모든 지인들과 동료들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그가 그리 큰 즐거움도 가지고 있어 보이지 않는 학원 강사 일을 하며 산다. 그가 가진 타인과의 의사 소통 매체는 그 흔한 휴대폰이 아니라 삐삐이다. 그런 그에게 동기들의 경조사 때문에 가끔 연락하는 대학 친구는, 야 정말 숨어 사는 것처럼 멋지게 보이려면 삐삐도 버리지 왜 들고 다니냐? 하고 빈정댄다. 정말 그렇다. 그는 쌍방 의사 소통은 거부하지만 일방 의사 전달까지는 거부하지 못하는, 그래서 나약하고 쓸쓸한 사람이다.
영화 속 그의 짝은 소희라는 고등학생이다. 재섭과의, 이른바 “거짓말 게임” – “진실 게임”과 달리 내내 거짓말만 늘어놓고 그 사이에 진실 하나를 끼워 넣는 게임이다- 을 통해 털어놓는 그녀의 삶은, 잿빛이다. 아버지는 건설계 공무원인데 뇌물을 받고, 어머니는 스포츠 강사와 바람이 났으며 멍청할 정도로 순진한 언니와는 그녀와 “통할” 가능성이 없다. 그녀는 아버지뻘 되어 보이는 사람과 원조 교제를 하다 급기야 임신을 하고 낙태까지 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녀의 이 모든, 갇힌 상황들은 그저 그녀의 대사 몇마디로 요약되어 설명될 뿐이다. 대사도, 화면 구성도, 극도의 절제미를 가지고 있다. 과잉되어 있다면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의 센치멘탈함뿐이다. 오히려 그 음악들이 빠졌더라면 이 영화는 우리를 더욱 훌륭하게 삶의 권태와 쓸쓸함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있었을 게다.

이 영화의 키워드는 “권태”와 “자기 상실”이다. 삶이 따분하다고 앙앙대는 학원생들에게 재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말 지루한 건 느이들이야. 어떻게 내가 학생일 때와 하나도 변한 게 없냐? 인터넷이 생긴 것 말고는 정말 변한 게 없다, 이 지루한 년놈들아!” 지루함을 타파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그는 삶을 꼬박꼬박 안 살고 띄엄띄엄, 1년 살고 1년 죽고, 1년은 내 삶, 1년은 남의 삶을 사는 방식까지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학원생들과의 대화는 매우 생동감있고, 대사 속에는 지금 세대의 언어를 차용하려는 노력을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 대목들에서, 이 영화의 주 관객으로 삼은 대상은 분명 십대였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십대를 이해하고픈 어머니들이 있다면 보아두어야만 할 영화이기도 하다. 나 역시, 요즘 십대가 이렇구나, 하고 배운 점이 많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학원 강사나 학교 교사를 “국어”나 “체육”이라고 부른다. 재섭은 성인으로서 유일하게 자기와 “통하는” 창녀를 자기 맘대로, 자기의 옛 여자친구인, 자기 아기까지 가졌으나 이제는 자기 앞에서도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시집 잘 가는, 그래서 가증스러운 이름 “혜경”을 붙여서 부르고, 그 창녀는 자기에게도 이름을 지어 달라는 재섭을 향해 “무슨 이름을 붙여야 될지 모르겠다”며 그저 “자기”라는 호칭을 준다.
 


소희는 재섭에게 자기 이름을 가르쳐 주고, 재섭의 이름을 알고 싶어하며, 다시금 재섭이 자기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지 재확인한다. 원조 교제를 할 때는 자기 이름이 아닌 친구 이름을 원조 교제 상대에게 가르쳐 준다. 그런 면에서 소희는 재섭보다 세상에 덜 절망한 것인지도 모른다. “혹시나 해서 산다”는 그녀는 가급적이면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숨기고, 이름없이, “어른”들과는 대화하기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재섭보다는 아직 열려있다. 그런 그녀의 존재 때문에, 재섭의 삶에 반짝 불이 켜진다.
재섭이 소희를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소희가 재섭에게 “앞으로 취미를 드라이브로 하기로 했다”고 말한 직후, 재섭이 갑자기 운전 면허를 따려들고, 차를 사기 위해 학원 수업을 더 맡아 돈을 벌려고 하는 등의 모습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전형적인 멜로물로 빠지지 않는 이유는, 운전 면허 따는 일이라는 사소한 일상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음을 통해, 관계 맺음의 지난함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객관적으로도, 이들의 관계는 지난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해있다. 30대 초반의 학원강사와 10대 후반의 여학생의 사랑을 고운 눈으로 봐줄 사람이 어디 흔할까? 당장 소희의 어머니가 알게 되면 멱살잡이를 하려들 것이고 재섭의 동료들 역시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며 경원시할 게다. 이들 둘의 관계에 대비되어 보여지는 소희의 원조 교제는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든다. 원조 교제의 상대자는 소희에게 부르짖고 있지 아니한가, 난 널 사랑한다고. 세상 사람들이 원조 교제니 뭐니 떠들겠지만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거라고. 내가 원하는 건 네 몸만이 아니라고. 하지만 보는 이들은 알 수 있다. 그게 사랑이 아님을. 왜냐하면 그들의 관계는 완벽한 일방 통행이기 때문이다. 소희는 자학하기 위해 그를 만날 뿐이다. 그녀가 그를 통해 얻는 영혼의 위로는 모래 한줌도 안 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정작 이들 관계를 지난하게 만드는 것은 그런 외부적 조건들이 아니라 두 사람 자신들이 사람간의 관계 지속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잊었거나, 아니면 원래부터 알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재섭은 소희의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지만 그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할 것 같아서 연락하지 않으며, 소희 역시 발랄하고 당돌한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막상 자신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주는 재섭에게 수줍은 소녀처럼 연락하지 못하고 마냥 기다린다. 그래서 이들의 만남은 어긋나고 힘들다. 그렇게, 자기가 자기를 괴롭혀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정말 있다.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탓에 재섭의, 뜻밖에 북받쳐 오르는 대성통곡도 그런 대로, 그럭저럭, 이해되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가 십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재섭의 냉소적 대사들을 통해 그래, 정말이야,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십대 관련 언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칠판에 “시”라고 크게 쓴 재섭은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치는 건 시가 아니라 시험 문제 정답이다.”라는 말을 하며, 문학에 정답이 있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임을 역설한다. 쓸쓸하고 답답한 재섭의 일생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작은 위로를 주는 건 발랑 까진 듯이 보이며 재섭에게 버릇없이 굴지만 그래도 내면에는 소녀다운 순수함이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학원생들. 만약 실제로 학원이라는 곳이 영화에서와 같이 학교에서보다 훨씬 적은 수의 아이들을 한반에 수용하며, 학원 강사들이 교사들처럼 소리만 지르지 않고 그들의 떼씀을 썰렁한 농담으로라도 받아주고, 권위적으로 야단만 치는 것이 아니라 동네 오빠처럼 그저 군밤 한대 때려준다면, 왜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학원보다 덜 중요시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아니, 그렇게라도 학생들이 숨통 틔울 수 있다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까지 든다.
동전 넣으면 군말없이 마실 것을 내주는 자판기나, 돈이 있으면 언제라도 몸을 내어주는 창녀, 스물네시간 주인 눈치 볼 것 없이 아무 것이나 사러 들락날락할 수 있는 편의점들은 차 갖다 주는 다방 레지에 따라 차 맛도 다르게 느껴지는 다방이나 맘 애타게 하는 애인, 깜깜한 밤중에는 문을 닫아 버리는 구멍 가게들과 달리 편리할 지는 모르나, 쓸쓸하다. 쓸쓸하다. 아, 쓸쓸하다. 재섭과 소희가 쓸쓸한 이유는 세상이 이런 쓸쓸한 것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재섭과 소희를 포함한 우리가 점점 의사 소통을 거부하고 일방 통행적 삶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인 겐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영화 전문 리포터 강윤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33 Belle 2013.07.21 657
32 [슈퍼 사이즈 미], 초콜렛칩 박아 넣은 어머니표 호밀빵 2013.07.21 798
31 [시민의 신문]에 실린 "80일간의 세계일주" 기사 2013.07.21 773
30 계간 [독립 영화]에 실린 서울환경영화제 소갯글 2013.07.21 640
29 여자는 세상의 미래다. 2013.07.21 636
28 금기된 사랑의 초상, [파 프롬 헤븐] 2013.07.21 737
27 섹스보다 더 좋은 게 뭘까? 2013.07.21 614
26 이 영화 외면하면 십리 못 가 발병 나오! 2013.07.21 693
25 정조와 모성애 사이에서... [베사메 무쵸] 2013.07.21 696
24 영화 [죽어도 좋아]의 에로틱한 행복 2013.07.21 792
»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영화 [버스, 정류장] 2013.07.21 733
22 유연함과 고고함이 빚어낸 한판 야구 이야기 2013.07.21 711
21 딸로 다시 태어난 아내와의 사랑 2013.07.21 624
20 결혼은, 미친 짓인가? 2013.07.21 637
19 의정부의 로미오와 줄리엣 - 오아시스 2013.07.09 713
18 세상 끝 희망의 섬, [꽃섬]으로 함께 가실래요? 2013.07.10 668
17 유쾌한 택시기사들 - 라이방 2013.07.09 733
16 I am Sam 2013.07.08 684
15 정신병자 남편 사랑하기- '뷰티풀 마인드 2013.07.10 817
14 바람둥이 청년의 몰락 '바닐라 스카이' 2013.07.10 1005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