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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자료를 다른 곳에 사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이른바 조폭 코미디가 한국의 극장들을 휩쓸면서 많은 사람들이 왜 한국에는 이런 식의 코미디 영화밖에 없냐, 하고 우려했던 것이 사실이다. “가문의 영광”이 “집으로…”의 흥행 기록을 깰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해지자 사람들은 한결같이, 또 조폭 코미디야? 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거꾸로, 조폭 코미디가 빚어낸 한국 코미디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피해를 입는 영화도 있다. 곧, 코미디이긴 하지만 조폭 영화는 절대 아니고 – 여기서의 “조폭 영화”는 단순히 그 소재가 조폭이어서만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조폭을 주인공으로 삼아 펼쳐지는 이야기가 폭력적 남성 세계의 성향을 미화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 사람들을 웃게 할지언정 “킬링타임용” 웃음만을 강요하지 않는 영화들이 그런 피해자들일 수 있다.
“YMCA 야구단”은 어찌 보면 그래서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영웅의 운명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부디, 이 영화가 불행한 영웅이 되지 않도록 많이들 보러 가시라. 오해되기에는 아까운 영화다.



영화의 타이틀이 올라가고 나면 복고풍 화면들이 우리를 그 시대로 차츰 이끌고 들어간다. 자, 이제부터 YMCA 야구단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오~, 라는 변사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리는 것 같다. 맨 처음 장면에 등장하는 운동은 그러나, 야구가 아니라 축구다. 돼지 오줌보를 가지고 만든 축구공 하나를 상투 틀고 짚신 신은 조선 총각들이 열심히 차고 있다. 주인공 호창도 그 중의 하나이며, 그는 이미 축구 경기에서도 출중한 운동 신경을 자랑하던 터에 잘못 차 올린 공이 선교사집 담을 넘어 마당으로 굴러들어가면서 운명적인 만남을 경험한다. 누구, 선교사와의 만남? 아니면 외국에서 유학했던 신식 처자 김혜수와의 만남? 아니, 아니다. 그가 경험한 운명적인 만남은 다름아닌 야구공과의 조우이다.
공이라면 돼지 오줌보로 만든 축구공밖에 모르던 그가 딴딴한 가죽으로 만든 야구공을 처음 보았을 때 한 일은 오감으로 그 정체를 밝혀내고자 애쓰는 것이었다. 만져보고 냄새 맡아보고 자기 머리에 툭툭 쳐보기도 하며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고?”하고 있던 그의 앞에 파란 눈에 코쟁이 선교사가 나타나 그 물건은 발로 차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던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 사실은 가히, 인간이 네발로만 기는 것이 아니라 서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순간에 견줄 수 있을 만한 혁명적 새로움이었다.
본인은 유감스럽게도 감독 김현석이 읽었다는 “한국 야구사”를 꼼꼼히 들여다 볼 만큼 학구적이지도 않고 스포츠 역사에 대한 상식도 없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도중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축구와 야구의 차이는 뭘까?
이런 추측을 해보았다. (이건 정말 본인이 “네멋대로” 해본 추측이니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무관함을 밝힌다.) 축구는 돼지 오줌보에다 물 채워서 만들면 되는, 단순한 공정을 거치면 되는 공으로 하는, 또 아무 다른 도구도 필요없이 그저 사람의 몸 하나만 있으면 되는 그런 운동이다. 그러나 야구는 축구에 비해 이미 “도구의 운동”이다. 공 자체도 축구공의 제조 과정보다 훨씬 복잡하며, 야구 글러브부터 시작해서 포수가 쓰는 마스크, 또 가장 중요한 야구 방망이까지, 다양한 도구가 필요하다. 또 경기의 룰을 따져볼 때도 단순히 이쪽 편에서 저쪽 편으로 공을 차서 넣으면 되는 축구와는 달리 – 안다, 안다. 월드컵 4강팀에 속했던 나라 백성으로서 축구에도 그보다 훨씬 더 정교한 룰이 있다는 것쯤은 안다. 본인은 가장 기본적인 승리 원칙을 말한 것이다. – 보다 복잡한 룰을 가진 야구는 어떻게 생각하면 “룰의 스포츠”라고 할 만큼 생판 모르는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까다로운 법칙이 많다. 이런 면에서 야구는 감히 말하건대, 축구보다 나중에 생긴, 보다 “인공적인” 스포츠가 아닌가 한다.
마을 서당의 아들인 호창이 신여성 정림으로부터 야구를 처음 배우는 장면은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호창은, 아직까지 사회의 주체적 구성원으로 인정되지 않던 “여자”라는 존재인 정림으로부터 야구라는 “새로운” 운동의 “법칙”을 배운다. 그리고 그 “여자”는 유혹의 미끼까지 던진다. “지금 베스볼을 하시면 조선 최초로 베스볼을 하시게 됩니다.” 조선 최초! 이 말에 갑자기 실학자들 생각이 났다. 조선을 개혁해서 더 잘 살게 하려면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들에게도 역시 은근히 “조선 최초”로 무언가를 보고 배웠다는 점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 않았을까? 새로운 문명, 새로운 기술에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이 그들을 더 큰 세계로 이끌고 가, 목숨의 위험까지도 무릅쓰게 만든 것이 아닐까?
다시 “도구의 운동”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있었던 부분은, 야구 도구의 토착화를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글러브를 받기 전까지 “YMCA 야구단”의 선수들은 더러 붕대로 손을 감기도 하고 천을 몇겹 겹쳐 꼬매 만든 글러브 모양의 커다란 손장갑을 만들어 끼기도 하며 자기 나름의 창의성을 있는 대로 발휘했다. 야구라는 운동 자체도, 우리가 반드시 서구의 야구와 그 룰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절대 규범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다면, 우리 식으로 변화하며 자리잡지 않았을까, 그래서 우리 몸과 마음의 성향에 맞는 운동으로 변화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뜬금없이 해보게 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YMCA 야구단”은 이름이 보여주는 한계, 곧 외국 선교 단체인 “YMCA”에서 후원, 조직한 야구단인 만큼 궁극적으로는 서구적 규범을 절대 규범으로 보고 따라가게 된다. )
이 영화에서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는 변화에 대한 유연함과 그것의 상대적 개념으로 나오는 고고함이다. 등번호 4번이 “죽을 사”자라서 싫다고 하던 호창은 정림이, “가장 잘 치는 선수가 4번을 단다”라고 하자 “선비 사”도 있다고 하면 군말없이 생각을 바꾼다. 과거 급제하여 어사가 되려던 꿈을 꾸던 호창은, 과거 자체가 없어진 탓에 갈 길을 잃자 야구라는 새로운 종목에 꿈을 건다. 그는, 그의 아버지 생각으로는 턱도 없을 비교, 곧 자기 야구 실력이 학자로 치자면 퇴계 이황쯤 된다는 비교까지 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슈팅 라이크 베컴”의 메시지를 떠올리게 할 만큼 휘는 공에 대한 이야기도 주요하게 떠오르는데, “휘는 공은 정당한 공이 아니기 때문에 직구만 친다”라고 했던 그도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휘는 공을 홈런으로 후려쳐 주는 지혜를 발휘한다. 아버지가 “요즘 학을 보기 힘들다. 아마도 변절한 선비들이 많아서 그런가보다”라고 한 말을 그는 시간이 지난 뒤 이렇게 되받아친다. “학처럼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학이 없어졌나 봅니다”.
그러나 영화는 고고함을 우직하다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내치지만은 않는다. 호창이 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흑백 바둑알 통을 냅다 집어던져 바닥에 흑백의 바둑알을 흩어지게 만들었던 – 그 장면은 참으로 상징적이었다 -, 마치 흑백 논리의 대변인처럼 보였던 아버지도 결국에는 사랑하는 아들의 실력을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관용을 보인다.
이 영화는 결국 이런 면에서 화해와 희망이라는, 어떻게 생각하자면 수많은 영화들에서 되풀이해왔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메시지의 중요성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전달했느냐가 늘 더 중요한 법이다. 저잣거리를 떠도는 걸인이다시피 한 무사와 머슴살이를 했던 상놈과 나뭇꾼 형제가, 일본 유학생과 상놈의 주인이었던 한량, 그리고 유생과 어울려 야구팀 하나를 결성해 내고, 을사조약 직후 노골적으로 약탈을 시작한 일본의 한 야구단에 맞서 승리하는 것으로 끝나는 이 이야기는, 외부의 적 앞에서는 내부적 계급 문제조차도 화해 가능한 것이 되며, 아무리 경제, 정치적으로 빼앗길 것 다 빼앗긴 약소 민족일지라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운동 경기라는 가상 대결의 장에서 더 견고한 결집력을 보이며, 그 결집력이 희망의 씨앗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며 지난 월드컵을 떠올리지 않은 이는 드물 듯하다. 박노자 씨는 파시즘적 광기라는 극언까지 했지만, 그는 불가능해 보이던 것을 해낸 이들의 기쁨을, 그리고 그 기쁨이 다른 난관을 만났을 때 어떤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는가를 아직도 잘 이해 못하는 것 같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만이 아니라 감성적 존재라는 점, 그리고 에토스보다는 파토스를 더 건드리는 스포츠가 가지는 힘의 의미에 대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이 영화, “YMCA 야구단”은 그러고 보니 월드컵 열기가 아직 남아있는 이 시기에, 참 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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