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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자료를 다른 곳에 사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전 사실 그다지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멀게는 일본 영화를 "국제적", 그것도 예술 "작품"으로서의 국제적 위치에 올려 놓은 "라쇼몽"의 작가 구로사와 아끼라로부터, 가깝게는 몇년 전 "러브 레터"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오겡키 데스카 (잘 지내시죠?)"라는 일본말을 전국민적으로 학습시킨 이와이 순지까지 몇편의 영화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만화를 비롯한 몇편의 "제패니메이션"을 보았지만, 제 무의식에 숨은 정치적 반일 의식(!) 때문인지 아니면 낯선 문화에 대한 일종의 자기 방어 의식 때문이었는지 어딘가 마음 한 구석에 일본 사람들은 정말 이상해, 정말 이상하게 심령적인 데에 집착해,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지요.  
 
십대 청소년들의 일종의 성장 영화라 할 수 있을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가, 제가 본 최근의 90년대 일본 영화 중에서는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감각의 제국" 같은 영화도 있지만 이 영화는 너무나 강한 정치적 요소를 지닌 영화였기에 또 그런 대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는 "아니 왜 러브 레터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이상하고 심령적이라는 거지?" 하고 의아해 하실 분들이 있겠습니다. 일일이 한 영화마다 제가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설명드릴 수는 없으니 한 영화만 예로 들어 보리고 하겠습니다. 제가 말하는 "심령적"이란 이를테면 "러브 레터"의 상황 설정, 곧 1. 죽은 사람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죽은 사람과 같은 이름의 산 사람에게서 답장이 왔다, 2. 그런데 그 산 사람이 편지를 보낸 자기와 거의 똑같이 생겼다. 라는 점입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모두 설득력 있기는 하지요. 한 마을에 살았던, 이름이 같았던 소년 소녀가 있었고, 그 소년은 소녀를 사랑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는 다른 도시에서 그 소녀와 비슷한 얼굴을 가진 여자를 만나 그 여자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어린 날의 소녀가 그 소년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중에 그 소년의 애인이 되는 여자의 얼굴과 너무나 유사한 모습을 지녔다는 사실이 어딘가 좀 섬뜩하지 않습니까?
 
이제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 "비밀"의 심령적 성격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지요. 두 모녀가 외갓댁에 제사를 지내러 떠납니다. 제사가 끝나면 스키를 타야지, 하고 신나있던 두 모녀는 그러나 끝내, 스키화 한번 타보지 못하고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졸음 운전을 하던 운전사의 버스가 산중턱으로 그대로 매다 꽂혔던 것이지요.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온 남편은, 눈 앞에서 아내의 죽음을 목도하고는 침통하다 못해 눈물 한 방울 못 흘리고 있는데, 그 순간 딸이 깨어납니다. 아, 딸이라도 살았구나, 하고 기뻐하던 남편을 딸애가 부릅니다. "여보..." 아내의 영혼이 딸의 몸에 들어간 것이지요. 영화는 이때부터, 이 현실적이라고 믿기 힘든 상황 위에 꽤 현실적으로 보이는 일상의 어려움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갑니다. 첫번째 문제 되는 것은 둘 간의 부부 관계였지요. 마음은 40대 아줌마로서 남편과 몸을 부대끼고 싶어하는데, 한두번 관계를 시도하던 그들은 남편의 거부로 끝끝내 "그것"을 포기합니다. "모나미 (딸의 이름이지요.)의 몸에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잖아..." 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그럼 입으로 해줄까?"하고 말해보지만, 남편은 단호히 거부하면서 "모나미의 얼굴을 하고 그런 말은 하지마!"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기묘한 상황이지요? 그러면서도 이 두 사람의 대화는 듣는 이들에게 대단한 설득력을 갖습니다. 그래, 나라도 저랬을 거야, 어떻게 딸애의 몸에 차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
 


이 영화 역시 초자연적 현상, 곧 어떤 사람의 몸에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가는 "빙의" 현상을 다룹니다. 물론 이런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영화는 일본 영화말고라도 최근에 히트친 인도 영화 감독의 "식스 센스"도 있고, 하다못해 "오멘" 등의 공포 영화들도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기는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일본 영화는 유독 이런 설정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문제는 그 설정에다가 늘 다른 요소 - "러브 레터"의 경우에는 애인의 이름과 자기 얼굴을 가진 자기 애인의 첫사랑, "비밀"의 경우에는 딸의 얼굴을 가진 자기 아내 -가 첨부된다는 것이지요. 일본 사람들은 이런 다중적 초자연 코드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 영화의 제목 "비밀"은 일차적으로 보자면, 딸의 몸에 아내가 들어갔다는, 아내와 남편만이 공유한 사실을 일컫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이 영화의 반전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부분까지 아내가 또 남몰래 간직하고 있는 사실 한 가지를 말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 사람이 관계 맺기를 두고 고민하는 장면을 보면서 어라, 이거 참 묘하게 근친상간적 요소를 집어넣었네?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근친상간적 요소를 집어넣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도덕적으로 어떻다 저떻다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유독히 역사상 근친상간과 동성애가 흔했던 일본 민족에게 - 제 역사 의식이 짧아서 이렇게 파악했다면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 근친상간은 우리에게 다가오듯이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은밀한 유혹이 아닐까, 그래서 "비밀"스런 욕구를 슬쩍 건드리면서 지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이다 싶기도 했습니다. 남편과 아내, 이 두 사람만의 이야기였다면 덜했을 "가족애" 코드는, 졸음 운전으로 사고를 일으킨 운전수의 아들이 나오면서 중요한 테마로 부각됩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사고로 대학을 그만두고 라면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하는데, 우연한 기회로 친해지게 된 남편에게 자기의 가족 상황을 털어 놓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방탕한 생활을 했고 그 와중에 자기를 가졌는데, 자기는 그 생활이 싫어서 아버지에게로 도망갔으며 그 후로 아버지와 둘이서만 살았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병든 뒤로부터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보내주었고 그 와중에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졸음 운전으로 사고를 낸 것이라는 게 그 아들이 설명하는 자기의 아버지입니다. "가족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는 게 그 운전수가 죽기 전에 한 말입니다.
 
가족은 과연 무엇일까요? 가족 구성원이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늘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금방 떠오르는 건, 비단 요즘 다시 화제가 된 "개구리 소년들"의 경우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영화 "비밀"은 남편에게도 떠나간 딸자식은 여전히 남아 있어 자신의 가장 강렬한 본능마저도 누르게 된다는 것, 한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려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일본의 집단주의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철도원"이나 심지어 "러브 레터"에서도 부분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이런 민족 집단, 가족 집단에 대한 끈끈한 유대감이 백 프로 긍정적으로 다가오지만은 않지만요.
 
끝으로, 부재에 대해 한 마디만 더하겠습니다. 부모님의 감사함을 알고 이제 효도해야지, 하면 이미 부모님은 떠나신 상태다, 라는 말들을 흔히 하지만, 한 사람의 부재가 그 사람의 존재를 오히려 확연히 깨닫게 해주고 그때부터야 비로소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알아가게 되는 건, 어쩌면 우리 인간 족속의 숙명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러브 레터"에서도, 남자친구가 죽고 나서야 그의 어린 시절을 알아가면서 그를 다시금 새롭게 이해하게 되고, "비밀"에서도 운전수 아버지가 죽은 뒤에야 아버지가 도박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보내느라고 그랬다는 걸 알게 되지요. 인간은 어쩌면 그래서, 생존했을 때에는 영원히 "비밀"스런 존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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