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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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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보았다. 이 글의 독자는 대부분 그 "미친 짓"을 한 "미친 사람들(!)"일 것이라 짐작한다. 그리고 결혼해서 살아보니 정말 우리가 귀가 닳고 닳도록 들었던, 그 키에르케고르인가 하는 사람이 말했다는, "결혼은 해도, 안 해도 후회한다"라는 말이 명문이라는 생각도 했을 터이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 해도 적어도, 이 영화의 자극적인 제목이 머리 한 구석에 남아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니야, 그래도 결혼은 꼭 해야 해,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아니 결혼의 신성함을 어떻게 저렇게 모독할 수 있지? 라고 생각하신 분이 있다면 나는 진심으로 그분의 소박한 진실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또한 다 보고 나서는 더욱, 결혼이란 할 게 못 돼, 라는 말을 읊조리게 하는 영화인데, 그 영화의 강력한 시청각적 메시지를 거부할 수 있다면 그 관객은 보통 사람이 아님에 틀림없다.

영화는, 이미 많이 들으셨겠지만, 경제적 안정이라는 조건도 챙기고, 준수한 외모와 "테크닉"도 놓치고 싶지 않아하는 한 여자가, 운나쁘게도 그 두가지 조건을 겸비한 남자를 찾지 못해 - 사실 그런 경우가 어디 흔한가? - 그 대안으로 법적인 결혼은 경제적 안정과 하되, 준수한 외모와 "테크닉"과도 비공식적인 "주말 부부" 형식으로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섹시걸 엄정화와 꽃미남 감우성 - 여러 모로 보아 감우성 캐스팅은 딱 맞아 떨어진 듯하다. 서울대 미대를 나왔다는 그의 실제 학력 배경에 어울리는, 냉소적인 영문과 시간 강사 역할은 그에게 대단히 잘 어울렸다. - 의 화끈한 정사씬이 군데군데 눈요기감으로 등장하니 그것도 기대하실 분들은 기대하시라. 또한, 둘의 관계가 남들에게 들켜 남사스러운 광경을 연출하지도 않고, 엄정화가 영화 속에서 두어번 내뱉는, "절대 들키지 않을 자신 있어"라는 복선적인 대사로 관객에게까지 안정감을 주는 이 영화는, 시간이 갈수록 우리를 감우성의 냉소적 태도에 감염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아주 냉소적으로, 적당히 장면장면들을 소비하게 만든다.

원작자 이만교의 솜씨라기보다는 시인 출신 감독인  유하 - 그는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시집으로 한때 시대를 주름잡았던 이이기도 하다 - 의 말재주라고 보여지는데, 중간중간 들리는 재치있는 대사들은 이 영화에서 놓칠 수 없는 재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치"라는 게 본디 그렇다시피 심오한 울림을 가지지는 못한다. 그 재미는 맥 라이언과 탐 행크스가 나오는 미국식 로맨틱 코미디의 말싸움이 주는 재미에 비견되거니와, 이 영화에서는 그 테마의 특성상 약간의 풍자를 후추처럼 덮어쓰고 있다.

허나, 그렇게 그 영화를 "소비"하고 난 뒤 필자는 그 영화가 관객의 의식, 무의식상에 미칠 심오한 영향에 대해 다시 한번 노파처럼, 노파심을 가지고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 이 영화에 그려진 여성상이 너무나 왜곡된 것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사에 그려진 여성들이 대부분 남성의 시선에 갇혀 있다, 라는 말은 많이들 들어보셨을 것이다.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지는, 유감스럽게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영화는 남자 주인공 감우성보다 여자 주인공 엄정화 행동의 적극성이 훨씬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남자 주인공의, 지극히 남성적 입장에서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결정적인 장면에서의 결정적인 대사 역시 남자 주인공의 몫이다. 여자 주인공은 대부분 남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질문을 해대거나 과용에 가까운 무모한 선언, 혹은 달콤한 속삭임만을 읊조릴 뿐이다.

그러면서 여성의 욕구는 크게 돈과 섹스로 이분되어 나타난다. 우리, 한번 솔직해 보자. 결혼한 우리들에게 애인이 생긴다면, 그가 단지 준수한 외모와 "테크닉"만을 가졌다고 해서 우리가 그에게 만족할 수 있을까? 당신이 원하는 애인은 어떤 사람인가? 뜨거운 열정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도 결국 다른 남자와 별 다를 바 없다는 씁쓸한 확인만 하며 돌아서게 되지 않을까?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애인은 우리의 일상을 이해해주고 불만에 귀기울여 주며 우리가 발전할 수 있도록 어떤 식으로든 도와주는 그런 남자 아닐까?

이 영화의 엄정화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 보라. 그녀는 주중 남편에게나 주말 남편에게나, 요리 잘 하고 집안 잘 꾸미는, 그리고 시부모 잘 모시는 꽃 같이 귀여운 여자다. 가사 노동을 분담하자거나 자기 발전을 위해 시간을 달라거나 하는 항변 대신, 정성껏 준비한 콩나물밥을 안 먹는다고 필요 이상으로 분노하고, 영어 회화는 기껏 주말 남편에게 오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그렇게, 어느 한쪽으로부터도 전형적인 "여자" 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그녀는 그러나 영화 어느 한 부분에서도 그렇기 때문에 욕구 불만인 여자로 표현되지 않는다. 두 남자를 오가는 생활에 변화가 오지 않는 이상 그녀는 영원히 행복할 것처럼 그려진다.

그래서 나는 "결혼"이 미친 짓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보다는 도대체 남자 감독이 여자를 그려낸다는 게 "미친 짓"이냐 아니냐에 더 관심이 갔다. 물론 감독 유하가 홍상수가 아니고 김기덕이 아닌 이상 그에게 급작스럽게 사회비판적 의식을 가진 영화를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분명 결혼 제도에 대한 비판 의식으로부터 출발했을 이만교의 원작 소설에서 상업적으로 팔릴 만한 엣센스만 쏙쏙 뽑아내어 소비적 영화로 만든 그가, 나는 밉다.

영화 전문 리포터/강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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