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자료를 다른 곳에 사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작년에 한창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를 한다고, 정작 들어야 할 관객은 들지 않으면서  소문만 무성했던 다섯편의 영화가 있었죠. “고양이를 부탁해”, “나비”,”라이방”,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꽃섬”이 그 영화들입니다. 저는 이 중 “나비”와 “라이방”을 빼고 나머지 세편의 영화를 보았는데요, 여태까지의 감상은 이 영화들은 “그들만의 리그”라고 불리울 만하다, 라는 생각입니다. 장사가 될 리가 없는 영화네, 하는 생각 때문이냐구요? 아니요, 그 반대지요. 보석 같은 영화라는 면에서, 안 보면 평생 후회할 영화라는 면에서, 이들은 폄하당하는 의미에서의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수준 높다는 의미에서의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 “꽃섬”을 소개할까 해요.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 영화를 DVD 나 비디오로 본다고 해서 크게 아쉬울 것은 없을 듯합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것 같은 장대한 “화면빨”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영화는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가슴 뭉클, 하게 하는 미학적 장면들이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화면이 커야 그림이 주는 감동이 크다, 라는 생각을 하시는 촌스런 관객들은, 여기 안 계신 거죠? 맞죠? ^^



이 영화에서 그림이 주는 감동은 오히려, 디지털 카메라의 섬세한 결을 느끼게 하는 화면의 촉감에 있습니다. 한번 보세요, 디지털 카메라가 그려내는 공간 감각은 보통 35 미리 필름 카메라가 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걸 말로 표현하기는 힘드네요,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고 할까요? 제 언어 능력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어떤 차이를 두고 제가 이러쿵저러쿵 하는지, 직접 한번 체험해 보세요.

로드 무비(Road Movie)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누가 그 말을 지었는지, 참 잘 지었지요. 길이 나오는,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오는,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딘가로 가는 걸 따라가는 영화가 로드 무비이고, 그런 면에서 로드 무비에는 흔히 길 장면이 많이도 나옵니다. 눈길, 오솔길, 바닷길… 하긴 세상 어느 곳의 장면을 찍더라도 – 집안 한 방에서 일어나는 사건만을 찍는 영화가 아니라면 – 길 없는 화면을 만들기는 쉽지 않겠지만, 전형적인 로드 무비인 “꽃섬”에는 참으로 자주 길이 나오고 그 길이 주는 분위기가 관객들에게 때로는 헛헛한 허무감을, 때로는 희망을 던져줍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여자 세명이예요. 마악 사산을 하고 – 아마도 사산 뒤에 오는 외로움 때문이라 짐작되는데 - 십수년 전에 자기를 버리고 떠나간 엄마를 찾아가는 십칠세의 여고생과 언뜻 보기에는 별 문제 없어 보이는,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고 싶은 염원에 돈많은 중늙은이에게 몸을 팔다가, 정말 지지리 재수도 없지, 그 늙은이가 복상사하는 바람에 그 일을 남편에게 몽땅 들켜버려서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된 한 가정주부와, 설암으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상실해가는 한 소프라노 가수가 함께 길을 떠나는 인물들이죠.

감독 송일곤은 “소풍”이라는 단편 영화로 이름을 널리 알렸던 사람입니다. 직장을 잃고 파산 상태에 빠진 가장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나가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간단한 줄거리의 이야기, 하지만 그 짧은 길이의 영화에 – 특히 IMF 사태 직후에 – 직장을 잃어 본 사람이라면, 혹은 그 아내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감정의 파고가 잘 드러나죠. 한 인터뷰에서 송감독은 그렇게 말했더군요. “꽃섬”의 인물을 연기할  세 사람과 영화 찍기를 시작하기 전에 짧은 여행을 했는데 그때 그들의 작은 버릇이나 말하는 방법을 지켜보았고, 시나리오 마지막 부분들을 실재하는 꽃섬에 당도해서 결정했다구요.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실제의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건 사족이지만, 요즘 많은 감독들이 배우에게서 실제하는 그 어떤 것을 뽑아내어 쓰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홍상수 감독이 그 대표적 인물이고 송일곤 감독 역시 마찬가지죠. 한번 생각을 해봤어요, 내가 배우라면 어떨까? 나의 “진정성”을 한 영화에 쏘옥 뽑아내주면 나는 허깨비로 남지 않을까? 경험을 못 해본 탓에 아직 대답할 수가 없네요. 어찌 생각하면, 옛날 사람들이 사진기가 자기 혼을 빼앗아간다고 믿었던 것처럼 혼을 빼앗기는 기분일 듯도 하고, 어찌 생각하면 자기의 진정성을 내보인 경험을 한차례 하고 나면 오히려 마치 심리 치료라도 받은 듯이 자기도 모르던 또 다른 진정성을 찾아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꽃섬”의 이야기가 어떻게 더 전개되는지 좀 더 소개할까요? 영화 초반부에 설암 때문에 절망 속에 빠져 자살하려던 소프라노 가수를 구해낸 다른 여자 두 사람은, 그 소프라노 가수 역시 설득하여, 원래 가던 발걸음을 재촉해서 먼저 여고생의 어머니가 일하고 있는 술집이 있다는 남해로 갑니다. 유감스럽게도 어머니는 세상을 뜬지 오래 되었고, 생전에 어머니를 알았다는 그 술집의 단골 손님인 한 남자가 여고생에게 이렇게 말해주죠.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네 걱정을 많이 했단다. 그것만 마음에 담아두거라. 그리고 더 이상 니 어머니에 대해 묻지 말아라.”

특별한 통곡도 없이, 떠들썩한 위로도 없이 세 사람은 원래 가려던 종착지, 세상의 끝에 있다는 꽃섬을 향해 갑니다. 그곳에는 가정주부의 친구가 살고 있거든요. 그곳에서 이 네 여자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죠.

이 특이한 경험이 이 영화에서 일종의 작은 “반전”이 될 수도 있으니 그 반전적 요소는 숨겨두기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반전이 영화 전체의 흐름을 뒤집을 만큼 커다란 충격적 요소는 아니라는 걸 미리 말씀드릴께요. 반전이기는 하나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러나 그 사건 때문에 영화 전체의 분위기가 그래, 이거야 하고 확 다가오게 만드는 면이 있다는 것 또한 덧붙여야 할 것 같네요.

저 개인적으로는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여고생의 사산, 그것도 어느 공중 화장실에서 혼자 신음하며 하는 사산 장면 때문에 무척 고통스러웠어요. 이것 또한 디지털 영화의 거리 없애기 효과 때문이었겠는데, 나중에 보니 제가 제 배를 움켜쥐고 땀을 흘리고 있더라구요.

사산, 몸 팔기, 소프라노 가수의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목소리의 상실까지, 이 영화는 여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상처들로 가득합니다. 드러내어 말하지는 않지만, 상처받은 인물들끼리의 위로는 마치 고양이들이 혀로 상처를 핥아 치료해주는 것처럼 따뜻하고 절실하지요. 어, 그래, 나도 저런 상황이라면 저런 사람을 저렇게 위로하고 저렇게 위로받을 거야, 하는 느낌, 여자라면 누구나 받을 것 같아요.

특이한 것은 여자 이야기에 게이들 이야기가 잠시 끼어든다는 거지요. 감독은 게이들의 여성성도 위로하고 싶었던가 봐요. 다소 엉뚱하게 보이는 면도 있었지만 비장하고 쓸쓸한 이 영화의 전체 분위기에 살짝 미소를 머금게 해주는 게이들의 이야기는 나름대로 참 흥미로워요.

남편분이 늦게 돌아오시는 날, 아이들을 일찍 재워놓고 붉은 포도주 한잔 손에 들고 편안하게 누워서 이 영화를 보세요. 슬쩍, 눈물 한방울이 떨어질 수도 있겠네요, 이유도 알 수 없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33 Belle 2013.07.21 670
32 [슈퍼 사이즈 미], 초콜렛칩 박아 넣은 어머니표 호밀빵 2013.07.21 810
31 [시민의 신문]에 실린 "80일간의 세계일주" 기사 2013.07.21 785
30 계간 [독립 영화]에 실린 서울환경영화제 소갯글 2013.07.21 654
29 여자는 세상의 미래다. 2013.07.21 648
28 금기된 사랑의 초상, [파 프롬 헤븐] 2013.07.21 750
27 섹스보다 더 좋은 게 뭘까? 2013.07.21 631
26 이 영화 외면하면 십리 못 가 발병 나오! 2013.07.21 705
25 정조와 모성애 사이에서... [베사메 무쵸] 2013.07.21 709
24 영화 [죽어도 좋아]의 에로틱한 행복 2013.07.21 842
23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영화 [버스, 정류장] 2013.07.21 749
22 유연함과 고고함이 빚어낸 한판 야구 이야기 2013.07.21 724
21 딸로 다시 태어난 아내와의 사랑 2013.07.21 644
20 결혼은, 미친 짓인가? 2013.07.21 649
19 의정부의 로미오와 줄리엣 - 오아시스 2013.07.09 726
» 세상 끝 희망의 섬, [꽃섬]으로 함께 가실래요? 2013.07.10 681
17 유쾌한 택시기사들 - 라이방 2013.07.09 747
16 I am Sam 2013.07.08 699
15 정신병자 남편 사랑하기- '뷰티풀 마인드 2013.07.10 839
14 바람둥이 청년의 몰락 '바닐라 스카이' 2013.07.10 1047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