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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자료를 다른 곳에 사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조폭은 아니다 그래도 재밌다
 
얼마 전 한 영화 잡지에, 영상원 교수 김소영 씨가 이런 요지의 말을 쓰셨더군요. 요즘 한국 영화판에 조폭 영화들이 세력을 잡으면서, 폭력으로 세계를 장악할 수 있는 조폭 남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면 그 외의 대상들은 영화화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숨겨져 버렸다고…  
“친구”를 비롯해, 한창 이른바 “조폭 영화”들이 흥행 순위 1위에서 5위까지 줄줄이 차지했을 때의 기사였습니다. 그런 시기를 조금 벗어나, 이제는 “집으로…”와 같은, 조폭 이야기들의 대척점에 서있는 것 같은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 물론 그 사랑이 지나쳐서 주인공 할머니가 이사까지 가야 되는 상황에 이른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 다행이죠. 이런 개선된 상황이 예외로 남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들만의 리그류

얼마 전에 소개드렸던 영화 “꽃섬” 기억하시죠? 그 영화를 비롯하여 몇편의 영화가 “그들만의 리그”로 묶여졌다는 것도 그때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영화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제까지 우리나라 영화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아니 영화에서뿐 아니라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대상이었네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삼류 밴드 가수, “고양이를 부탁해”의 여상 졸업생들, “꽃섬”의 절망한 세 여자들… 오늘 소개드릴 영화의 인물들도 역시 우리나라 영화에서 여태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직업의 사람들입니다. 바로, 택시 기사들이죠.
 
         
택시기사는 운명적?

미국 영화 중에는 택시 기사를 주인공으로 한 유명한 영화가 한편 있죠?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택시 드라이버”는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와 반전이라는 진지한 테마가 잘 만나 하나의 걸작을 이루어 낸 영화죠.  그런데, 미국에서도 택시 운전은 푸대접 받는 일인가 봐요. 이 영화에서도 택시 운전수들이 삶에 대해, 자신의 직업에 투덜거리는 장면을 볼 수 있고 그 일의 고됨 또한 알게 모르게 화면에 나타나곤 하거든요. 오죽하면 어떤 미국 영화에서는 손님으로 탄 한 남자가 택시 운전하는 친구에게 그러더라니깐요. “아 요즘에 너 빼고 백인 택시 운전수 봤냐?” 곧, 택시 운전이라는 게 3D 직종처럼 못 박혀 유색 인종이나 하는 직업이라는 뜻이겠죠.
영화 “라이방”에서도 이 직업, 택시 운전은 정말 할 것 없어 할 수밖에 없는, 벗어나고 싶어도 평생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적 직업인 것처럼 표현됩니다. 그렇지만 절대 “택시 드라이버”와 같은 심각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끔찍한 영화는 아니죠. 자신의 삶에 대해 투덜거리고 한때 나쁜 생각까지 품어보지만, 결국엔 자기 그릇만큼만 밥을 담아 먹고 살아가는 세 사람의 소박한 택시 기사들의 이야기입니다.
 

라이방의 인물들

이 영화에 큰 사건은 없습니다. 그대신 세 인물의 연기가, 그 맛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하는 재미를 주죠. 그래서 오늘은 예외적으로 세 주인공을 한번 대대적으로(!) 소개해 볼까 합니다. 참, 참고로 이 영화에서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영화 속 인물 이름으로 썼답니다.

1. 김해곤: 배 나오고 그을린 피부의 외모 탓인지, 남정네 그리운 구멍가게 여주인(송옥숙이 특별 출연하는데요, 어쩌면 이미지와 그리도 딱 잘 맞아 떨어지는지!)이 ‘그거 잘 하냐’고 노골적으로 물으며 다가올 정도인 노총각 해곤은 마사지걸로 일하는 연변 처녀 미령을 짝사랑합니다. 그녀의 존재는 이 영화 속에서 남한 사회의 배금주의적 분위기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돈벌러 온 이 처녀, 남한 사회에서 돈이면 다 된다, 는 걸 재빠르게 파악하고는, 나이 칠십이 넘은 고령의 한 노인의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오로지 그 노인이 죽은 뒤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서이죠. 또한 남한에 와서 진 빚 3백만원을 갚아준다는 말 때문이기도 하구요. 안타까운 해곤, 3백만원을 가지고 그녀를 찾아가 “오빠라고 생각하고 받아라”라며 돈을 건네주려 하지만, 미령은 앙칼지게 거절합니다.  자기가 무슨 고아냐, 남한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그 할아버지는 자기를 아버지 같이 생각하라고 하더니, 왜 당신은 또 오빠라고 생각하라고 하느냐, 이런 말을 하면서요. 그 대목에서 전 한번 생각해 보게 되더라구요. 정말 그러네, 우리나라 성 희롱하는 남자들이 대부분 써먹는 레퍼토리가 여동생처럼 생각되어서 그랬다, 딸처럼 생각해서 그랬다, 네… 가족 관계가 엄한 데 와서 고생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란 말이죠.

2. 최학락: 최학락 씨는 술 한잔 걸치고 입만 열었다 하면, 자기가 갔다 온 것도 아닌 베트남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 도가 얼마나 지나친지 학락의 입에서 베트남의 베, 자만 나오면 불알 친구 못지 않은 해곤과 준형도 불에 데인 듯이 화다닥 일어나며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곤 하죠. 학락은 베트남 참전 용사인 삼촌을 하나님보다 더 존경하거든요. 이 영화 속에서 베트남은 답답한 일상에 갇힌 택시 기사들에게 하나의 탈출구로서의 이미지를 제공하는데, 영화 “바리케이드”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경우 미국이 그 탈출구가 되는 것에 비해서 독특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 부분에서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국제 정치 상황에서 보자면 베트남전이 미국이라는 거대 세력에 맞서 싸운 베트남 민족의 당찬 저항과 승리라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용병으로 갔다온 한국 남자들이 “한 재산” 벌어왔던 탓에 피바다였던 그곳을 돈바다로 생각하게 된 우리나라 “몇몇” 사람들을 비꼰 것으로 볼 수도 있겠죠. (윗쪽 사진의 맨 왼쪽부터 해곤, 학락, 준형입니다.)
학락은 일찍 아이를 낳았던 탓에 벌써 18세가 된 딸아이가 있는데, 이 딸아이는 배은망덕하게도(!) 택시 일로 돈을 벌어 자기 뒷바라지하는 아버지를 버리고 입양되고 싶어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피아노 공부를 계속 하려면 더 돈많은 부모가 필요하다는 거죠. 이 설정은 그닥 현실감있게 와 닿지는 않지만, 감독은 아마 이런 이야기로 자식조차도 무시하는 택시 기사들의 고달픈 현실을 그리고 싶어했던 듯합니다.
         
3. 조준형: 우리나라 뉴스를 믿을 수 없어 CNN 뉴스만 듣고, 코스닥이니 나스닥이니 증권계쪽 소식도 훤하면서 자신이 대학 나왔음을 은근히 과시하는 준형은 살아가는 걸 보면 제일 구두쇠처럼 굽니다. 점심도, 친구 둘이 찌개 시켜 놓고 먹고 있으면 꼭 한발짝 늦게 들어와 “아줌마 여기 공기밥 하나요!” 하고 빈대 붙어 친구들뿐 아니라 식당 아줌마에게도 빈축을 사며 ? 물론 그럴 때도 “아 니네들 우리 나라 음식 쓰레기가 한해에 얼마나 되는지 알어? 이거 남을까봐 내가 그냥 공기밥만 하나 시키는 거야.” 하면서 자신의 해박함과 빈대 붙기의 논리적 정당성을 역설하지요. ? 옷도 택시 기사 옷 한 벌로 버티지요. 소심하고, 그렇지만 한없이 선해 보이는 준형은 그러나, 이자 많이 쳐 준다는 회사 상무의 말에 3년간 모았던 돈 천오백만원을 빌려주었다가 떼어먹히고는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처럼 혼자 사는 돈 많은 할머니의 집에 들어가 돈을 훔쳐내 오자고 제안합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돼, 로 일관하던 학락과 해곤, 서서히 그 계획에 동조해 가는데…
 
         
연극을 영화로

이 영화는 “걸어서 하늘까지”를 만든 감독 장현수의 작품입니다. 그는 이 영화의 인물 셋이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이 영화의 승패가 달려있다고 생각했었는지, 영화 찍기 이전에, 원래부터 연극 배우였던 이 배우들이 부산에서 한달반 동안 이 영화와 같은 제목의 연극을 하도록 했다는군요. 연극 연출 또한 장현수 감독이 했구요. 참 특이한 작업 방식이다 싶더라구요.  이것도 한국 영화 다양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요소가 될 듯 싶어요. 한편으로는 대본도 없이 그냥 배우들이랑 여행가는 심정으로 영화 찍으러 가는 홍상수 감독 같은 이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배우들이 스스로를 영화 속 인물들과  완전히 동일시할 수 있도록 한달 반에 걸친 연극 공연으로 준비시키는 장현수 감독 같은 이도 있는 게 요즘 한국 영화판이네요.
영화 제목인 “라이방”의 의미는 “선글라스 뒤에 숨고 싶은 심정, 사는데 자신없는 심리”와 “따가운 햇볕 같은 현실을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상징한다고 어딘가에서 읽었는데 말이죠, 제 생각엔 오히려 최고급 선글라스인 “레이밴”을 씀으로써 자기 삶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상승시켜 연출해 보려는 허영심 같은 걸 나타낸 게 아닌가 싶더군요. 참, “라이방”이라는 발음은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이 베트남에서 이 선글라스를 많이 쓰면서 그 나라 사람들이 하는 발음까지도 한국으로 가져와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거라네요.
 

"선풍기 기법"을 아세요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처음 본 특이한 카메라 기법을 하나 소개하자면, 이른바 “선풍기 촬영법”입니다. 영화 도입 부분에 카메라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을 오가면서 인물들의 얼굴도 보이지 않을 만한 거리에서 한 장면을 잡는데, 그게 회전 선풍기의 움직임과 유사 ? 혹은 선풍기에 아예 카메라를 부착시켰든가… ^^- 하다는 걸 저는 나중에사 깨달았죠. 장 감독이 그저 실험적 의미에서 그랬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특이한 장면이었습니다. 말씀 드렸다시피 인물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지경으로 꽤 먼 거리에서 잡은 장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마치 선풍기 뒤에 숨어 그 인물들을 실제로 훔쳐 보고 있는 것 같은 현실감이 들었거든요. 한번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카메라를 인물들에게 어떻게 들이대고 있는지, 어떤 때 클로즈업하고 어떤 때 멀리서 잡았는지 등등을 유심히 관찰해 보세요. 그런 요소에도 실은 모두 다 의미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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