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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자료를 다른 곳에 사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왜 가끔, 영화를 보다 보면 겉모양은 애인데 표정은 완벽한 성인, 아니 성인 뺨 칠 만한 연기를 하는 아역 배우들이 있잖아요? 물론 완벽하게 애처럼 연기를 하는 애도 "연기"를 한다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너무 어른스럽게 연기하는 아역 배우를 보면 전 왠지 좀 징글징글하더라구요.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 "아이 엠 샘(I am Sam)"에 나오는 다코타 패닝(Dakota Fanning)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곱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아버지 샘(숀 팬)에 비해, 실제로 일곱살이면서도 거의 스물일곱살쯤의 성숙한 자세를 보이는 딸 루시로 분한 다코타는 그래서인지 오히려 사랑스럽다는 느낌보다는 쯧쯧, 정신장애를 가진 아버지 옆에서 크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어린 나이에 저렇게 커버렸누, 하는 안쓰러움을 갖게 만들지요. (아, 이런 느낌을 가졌다면 캐스팅은 결국 성공한 셈이 되는 건가요?)

궁금하실 테니 얼른 줄거리 소개부터 할까요?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정신장애를 가진 샘은 루시가 일곱살이 될 때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라기보다는 다소 특이한 방법으로이긴 하지만 하여간 그녀를 잘 키웁니다.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루시의 일곱살 된 모습은, 아 저 아이는 정말 애정을 듬뿍 받고 자랐구나, 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하거든요. 샘이 루시를 키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이는 부모가 혼자서 키우는 게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아이가 크는 거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정신장애 때문에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샘은 경제적으로도 늘 쪼들리고, 아이 키우는 걸 곁에서 본 적도 없는 탓에 기저귀 하나 잘 채울 수 없는 사람인데도, 루시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었거든요. 그 이유는 바로, 늘 샘을 도와주었던 이웃집 아줌마 애니와, 샘처럼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장애가 없는 그 어떤 친구보다도 더 훌륭한 지원자가 되어 주는 샘의 친구들 덕택이었죠. (애니의 신발 한켤레를 사기
위해 다 같이 신발 가게에 몰려가서 각자 자기 생각대로 한켤레씩 집어와 왜 이 신발을 애니가 신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장면은 정말 우리를 미소짓게 만듭니다.)

수요일에는 이홉(IHOP: 미국의 유명한 레스토랑 체인이예요)에 식사하러 가고, 목요일 저녁엔 비디오를 함께 보며, 금요일에는 가라오께의 밤을 가지는 이 행복한 부녀는 루시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문제에 봉착합니다. "문제"란 다름아닌 국가 기관이지요. 아동 보호 관련국에서 샘의 지능이 낮다는 이유로 루시를 다른 곳에 입양시키려 하거든요. (감독이 샘의 지능을 일곱살로 정한 것은, 그 나이에 루시가 학교에 들어가야 하며 그 때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는, 곧 "학교"라는 기관을 문제의 씨앗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학교"라는 제도 교육 기관이 과연 사람이 성숙하기 위한 데 필요한 필수 조건인가, 하는 회의에 빠져 보신 일이 있을 거예요.)

루시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정부와 싸워야 하는 샘은 필사적으로 변호사를 찾아 나서고, 이 일에 가장 적합하지 않아 보이는, 염두에 두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자기 커리어의 발전밖에 없는 여자 변호사 리타 (미쉘 파이퍼)가 이 일을 맡게 됩니다. 자기와는 달리 더듬더듬 느릿느릿 말하고, 그것도 한 가지 용건을 말하기 위해서 삼천포에 수십번 갔다 오는 샘과의 간단한 대화 자리조차도 힘겨워하던 리타가 이 일을 맡기로 결정한 것은, 이기적인 그녀의 성품을 아는 그녀의 동료들이, 그녀는 결코 샘을 돕지 않을 거라고 수근거리는 데에 반해서, 자기 이미지 개선을 하기 위한 데에 그 이유가 있었죠.

이제 대충 짐작이 되시죠? 자기 아버지를 세상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성숙한 일곱살짜리 아이 루시와, 루시 없이는 도무지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샘과,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샘이나 샘의 친구들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가진 리타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흘러갑니다. 루시가 과연 샘의 손에 돌아갈 것인가, 도 영화를 마지막까지 보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지만, 법정 싸움 중에 드러나는 여러 인물들의 성격 묘사 또한 잔잔한 재미를 더해주지요.

신경질적이고 완벽주의적 성격을 가진 리타의, 때로는 난폭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보면, 차라리 실수를 많이 하고 자폐증적 모습을 보이지만 그 마음의 근본은 사랑으로 가득찬 샘 같은 사람이 훨씬 "정상적으로" 보입니다. 리타와 샘의 성격은 여러 모로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가장 두드러진 점은 속도감입니다. 샘은 리타가 법정에 서서 처음으로 자기를 변호할 때 넋을 놓고 그녀의 입을 바라보지요. 사람으로서 어떻게 저렇게 빨리 말할 수가, 하는 표정에는 샘의 경외감이 담겨 있습니다. 그밖에도 리타는 자동차를 정신없을 정도로 빨리 몰며 그녀의 핸드폰은 쉬지 않고 울립니다.

결국 이 영화는, 과연 "부모가 되는 데에 필수 조건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더불어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기준이 어디에 있고, 국가가 개인의 문제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혹은 개입해도 되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국가 기관과 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대단히 부정적으로 묘사됩니다. 샘이 지능은 부족할지 몰라도 루시에 대한 애정만은 누구보다도 뜨겁다는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법정에 나온 이웃집 아줌마 애니는, 침착한 태도와 높은 학력 수준 등으로 재판관조차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데, 반대 심문에 나선 아동 보호국측 검사는 잔인하게도 이 말 한마디로 삽시간에 분위기를 바꾸어 놓지요. "당신은 많은 아버지들을 보아왔는데 샘이 그 중 가장 훌륭한 아버지였다고 말하는군요. 하지만, 당신은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일이 있지요? 그런 당신이 어떻게 아버지 역할에 대해 평가할 수 있을까요?"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애니는 증인석에서 당장 내려가 버립니다. 루시를 그 아버지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애니의 가장 아픈 상처까지도 후벼 파는 검사는 "법 안에서"라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그들의 태도를 대표적으로 보여준 셈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자신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어요. 자, 과연 루시는 샘과 그의 친구들의 곁에서 잘 클 수 있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을 샘에게는 결국 국가 기관의 도움이  필요한 것 아닐까? 아마 여러분도, 특히 어머니인 여러분들은 스스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보게 될 겁니다. 검사가 여러번 루시에게 하는, "네게는, 네 아버지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해"라는 말이 안타깝게도 이 냉정한 현실 세계에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인 것을 어쩌겠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떤 판결을 내리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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