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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자료를 다른 곳에 사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역사에 이름을 남긴 남자들 뒤에는 반드시 위대한 여자가 있다, 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제 기억으로는 로댕의 연인인 까미유 끌로델, 슈만의 연인 클라라 등등, 우리에게 그 이름이 낯설지 않은 "위대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모아 낸 책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전 그 책의 표지만 보고도 그래 맞아, 그녀들이 없었다면 로댕과 슈만이 어떻게 그 당대에만이라도 유명할 수 있었겠어? 라는 생각과 더불어 새삼 여자라는 게, 여자이기 때문에 그 남자들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누구누구의 연인으로밖에 이름을 남길 수 없게 만들었던 그 당시의 시대 상황이, 그리고 백여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남녀 차별적 성향이 남아있는 이 시대가 억울하고 억울하도다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영화 "뷰티풀 마인드" 역시 여자의 입장에서 보고 나면 억울하다, 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주인공인 천재 수학자 내쉬의 삶이 노벨상을 타는 "영광"으로 마무리되는 줄거리를 가능케 한 게 실은 내쉬 본인이라기보다는, 내쉬의 아내 알리사임에도 불구하고 알리사의 역할은 영화 전체를 놓고 볼 때 매우 축소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거든요.

이거, 이 영화 한번 보시라, 고 소개하는 칼럼의 시작치고는 묘하군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좀 혼란스러우시죠? 하지만 제 영화 소개가 늘 그래왔듯이 이런 관점에서 한번 보세요라는 추천 정도로 생각해 주세요.



내쉬는 어디 깡시골쯤으로 묘사되는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프린스턴 대학 장학생으로 들어올 정도로 천재적인 머리를 지닌 사람입니다. 대도시 중상층의 부유한 환경에서 잘 교육받고 이곳에 들어온 같은 수학과 학생들을 시종일관 못마땅한 눈으로 지켜보는 그는, 특유의 무뚝뚝함과 수줍음으로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수업은 내 창의력을 파괴시킨다"는 모토하에 강의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지요. 같은 동료 남자들 - 내쉬의 대학 시절을 그리는 장면들에서 여자라고는, 학사 주점에 잠깐 들른 날라리들만 나오더군요. 아마도 당시 프린스턴 대학, 특히 내쉬가 다닌 수학과에는 여자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나 보죠?-과의 인간 관계도 원만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강원도 감자 바위 내쉬가 금발머리 여자들과는 어디 잘 지냈겠습니까? 학사 주점에서 소개받은 한 여자를 앞에 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던 그, 오랜 침묵 끝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차를 마시고 그 다음엔 술을 마시고 데이트를 하는 이유가 결국엔 서로 타액을 주고 받는 섹스를 위한 것 아니오? 우리 그냥 그 단계로 곧장 넘어가는 게 어떨까?" 결과는? 보기좋게 따귀를 맞은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 미소를 지으며 돌아섭니다. (그 미소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가 그런 과격한 말을 했던 것이, 여자에 대해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한 탓에, 그래서 머리가 텅 비었을 것 같은 금발 머리 여자를 놀리기 위한 이유였던 건지, 아님 정말로 여자를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던 건지 말이지요.)



그가 나중에 평생의 동반자 알리사를 만났을 때도 그는 비슷한 대사를 읊조리죠. (영화상으로는 따귀 때린 여자와 알리사 사이에 다른 여자를 만난 일이 묘사되지 않으니 그간 경험을 축적할 일도 없었겠지요.) "난 당신과 섹스하고 싶소."라고. 그러고선 말합니다. "따귀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따귀 대신 알리사의 부드러운 키스. 그러면서 내쉬는 어려운 수학 문제보다 더 어려운 사랑이라는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강의에 들어오지도 않고, 다른 학생들처럼 어떤 성과를 내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도서관과 자기 방에 앉아 유리창에다 뭐라고 뭐라고 공식 쓰기를 나열하며 시간을 보내는 그를 어느날 교수가 부릅니다. 도대체 어쩔 작정이냐고... 이런 압력을 받아가며 버티던 그는 어느날 겨우 27페이지짜리 논문을 하나 들고 교수에게 찾아가는데, 그 결과는? 150년간 믿어져 왔던 이론을 순식간에 뒤집는 새로운 이론을 발표한 겁니다! "나와 남을 구별하는 건 나 자신만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를 창조해 내는 거야"라는 믿음으로 공부해왔던 그가 드디어 인정받게 된 거지요. 그 이후 그의 인생은 승승장구, 그 이름도 유명한 MIT 대학 교수가 되어 괴팍하지만 뛰어난 선생으로 유명해지는데, 그런 그를 어느날 정부 비밀 요원이 찾아옵니다. 그에게 맡겨진 과제는 적국의 암호를 풀어내는 것. 단시간 안에 그 일을 수행해낸 그를 보고 정부 요원들은 찬탄을 금치 못하는데...



자, 이제부터 벌어질 일이 흥미진진할 것 같죠? 영화보는 재미가 떨어질까봐 줄거리는 여기까지 소개하겠습니다만, 이 영화가 그 이후 지적으로 복잡한 영화가 될 거라고 예상하시는 분들에게 한가지 힌트를 드릴께요. 이 영화는 이때부터 오히려 내쉬와 알리사의 관계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알리사의 헌신적인 사랑 이야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아마도 뷰티풀 마인드를 소유하는 일은 대단한 것일 게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선물은 뷰티풀 하트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이 영화의 주제라면 주제입니다. "마인드"가 지성이나 정신력을 뜻하는 것이라면 "하트"는 심장, 마음씨 정도로 쓰인 것이겠죠. "뷰티풀 마인드"의 소유자 존 내쉬가 "뷰티풀 하트"의 소유자 알리사를 발견한 일, 그게 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아마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될 거예요. 만약 내 남편이 불구가 된다면? 그의 경제적 능력이 갑자기 없어지고 앞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어지게 된다면? 누구나에게 다가올 수 있는 그런 상황에 대비해서 자기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나의 마음, 남편을 향한 나의 사랑은 어느 정도로 뷰티풀한가, 하구요. 하지만 제가 얘기하려는 바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알리사처럼 남편을 지키고 돌봐서 위대한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라는, 이 영화가 내심 주고 있는 교훈을 받들어 조강지처 되자, 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저, 나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를 한번 생각해 보자는 거죠. 글 머리에도 말했지만, 여성의 희생을 기반으로 성공한 남성 신화, 우리 이제 지긋지긋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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