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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교수의 홈페이지

이곳에 있는 글들은 제가 2001~2년에 주부넷의 영화칼럼과 오마이뉴스의 영화란에 썼던 것들입니다.
자료를 다른 곳에 사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이미 한번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는 스토리를, 그것도 그 영화가 나온 지 몇년 지나지 않아 다시 리메이크 해보겠다고 결심한 감독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그 감독이, 다시 만들면 대박이 터질 상업적 잠재성을 원래의 영화에서 보았거나, 내가 만들면 저것보다 훨씬 더 잘 만들 수 있어라는 자신감이 있어서겠지요. 이 영화가 개봉된 미국에서는 심지어, 원래의 영화와 리메이크된 영화가 동시에 상영되는 상황까지 겹쳐져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서 이 상황을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이 두 영화 자체의 단순 비교말고도,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사생활이 재미있게 얽히고 설켜 있거든요.

이리저리 돌리지 말고 딱딱 요점만 얘기해 보라구요? 좋습니다. 제가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는, 오리지널이 아닌 리메이크 영화로 "바닐라 스카이 (Vanilla sky)"입니다. 오리지널 영화의 제목은 "오픈 유어 아이즈 (Open your eyes)"이구요. (얼마 전에 작고한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마지막 작품 "아이즈 와이드 샷 (Eyes wide shut)"과 혼동하지는 마셔요. ^^) 그런데 재미있는 건, 두 영화에 나오는 여배우가 동일 인물인 페넬로페 크루즈(Penelope Cruz) 라는 사실이지요. 게다가 더 재미있는 건 페넬로페 크루즈와 현재 사랑에 빠져있는 탐 크루즈(Tom Cruise)가 "바닐라 스카이"의 남자 주인공이고, "오픈 유어 아이즈"의 감독을 맡았던 알레얀드로 마에나바르(Alejandro Amenabar) 감독이, 탐 크루즈가 제작을 맡았던 영화 "디 어덜즈(The Others)"의 감독이기도 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디 어덜즈"에는 또, 탐 크루즈의 전 부인 니콜 키드먼(Nicole Kidman)이 나오죠.

복잡하죠? 사실 알고보면 아무 것도 아닌 헐리웃 배우들의 복잡한 관계를 왜 구구절절이 설명하느냐구요? 왜냐하면, 이 영화 "바닐라 스카이"가, 이 배우들의 현실과 영화 속에서의 관계의 복잡성 만큼이나 복잡한 구조로, 현실과 꿈을 구분할 수 없도록 틀을 짜놓았기 때문에, 그 우연의 일치가 재미있기에 한번 그렇게 비교해 본 거예요. 물론 영화판 사람들은 이 우연의 일치를 전적으로 마케팅 전략으로 써먹어서 "오픈 유어 아이즈"와 "바닐라 스카이", 그리고 두 영화와 사실 전혀 상관없는 "디 어덜즈"가 한 포장에 묶여 영화 잡지란에 자주 오르내리곤 하죠.



영화는 잘 생긴 탐 크루즈(데이빗)가 아침에 일어나 욕실에서 거울을 보며 자기 얼굴에 만족해하다간, 옥의 티 같은 흰 머리카락 하나를 똑, 뽑아내어 버리는 것으로 시작하죠. 근사한 스포츠카를 타고 거리로 나간 탐 크루즈, 불현듯 거리에 아무도 없다는 걸 보고는 갑자기 차에서 내려 마구 뛰어가기 시작합니다.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죠. 그러다가 자기 소리에 놀라 꿈에서 깨어납니다. 깨어난 현실 자기 방 침대 위에는 잘 빠진 금발 미녀 카메론 디아즈(쥴리 지아니)가 누워있다간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 생긋 미소를 지으며 잘 잤어, 자기? 하고 인사를 하죠.

이런 식의 엎었다 뒤집었다가 영화 내내 지속됩니다. 참을성 없는 분들은 우씨, 이거 뭐야, 왜 관객을 우롱하는 거야, 라고 짜증을 낼 만큼... 하지만 잠깐! 어느 게 현실이고 어느 게 꿈이다, 라는 구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그야말로 마음을 비우고 나면 이 영화는 다시 재미있어지기 시작하죠.

가상 현실이 현실 사회에 공포감을 주기 시작한 시기 이래로 - 이 말인즉슨, 사회학자들이, 가상 현실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운운하면서 특히 게임 중독에 빠진 청소년들을 우려하기 시작한 시기 말입니다 -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이냐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참 많이 나왔죠. 최근 그런 흐름의 영화로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존 말코비치 되기"나 "매트릭스"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이 영화도 이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요, 감독은 친절하게도 작은 장치들로 관객에게 말해주죠. 이건 이런이런 영화야, 그러니까 그걸 전제하고 보렴. 이를테면 탐 크루즈가 잠에서 깨어날 때 자명종 시계 소리 대신 듣게 되는 "눈을 떠~ 눈을 떠~ (Open your eyes!)"라는 끊임없는 목소리나 그의 생일 파티장에 설치된 홀로그램, 혹은 탐 크루즈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회사의 이사단들이 동화 백설 공주의 일곱 난장이로 불리우는 설정 등이 일종의 복선으로 등장합니다. 그것말고도 상징적인 요소들은 많아요. 일단 제목부터... 하지만 다 말씀드리진 않을께요. ^^

탐 크루즈는 상당한 바람둥이로 나오죠. 이 영화는 마치 바람둥이의 행태를 도덕적으로 준엄하게 나무라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해요. 카메론 디아즈와 하룻밤에 네번이나 사랑을 나눌 정도로 열정적으로 관계를 가지면서도 그녀의 존재를 진지하게 생각지 않는 탐 크루즈는, 생일 파티에서 페넬로페 크루즈(소피아)를 알게 되고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죠. 그걸 알게 된 카메론 디아즈는, 탐 크루즈를 차에 태우고 이성을 잃고 속도를 내어 달리면서 말합니다. "너, 신을 믿니? ... 네가 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지, 난 널 사랑해!" 결국 큰 교통사고로 카메론 디아즈는 사망하고 탐 크루즈는 삼주반만의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 자기의 현실을 목도합니다. 팔 다리에 입은 부상보다 더 끔찍한 건, 잘 생긴 그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는 것! 그의 바람끼가 마땅한 처벌을 받았다는 냥...

묘하죠, 관객은 그의 잘 생긴 얼굴에 자기 동일시라도 하게 된 양, 탐 크루즈의 현실과 꿈의 세계가 왔다갔다하면서 함께 변하는 그의 잘생긴 얼굴과 흉측한 얼굴 사이에서 긴장합니다. 흔히 얼굴이 무기다라고 하는 우스개도 있지만, 탐 크루즈의 흉측한 얼굴은 영화 내내 긴장감을 주는 공포 영화적 요소로 작용하죠. 그가 긴장된 모습으로 거울에 다가서면 나도 모르게 따라 긴장하게 되는 거죠, 아 그의 얼굴이 지금은 어떤 상태일까, 라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영화에서 그의 꿈과 현실이 왔다갔다하는 장치를 위한 핑계로 사용하는 건 인간 냉동 기술입니다. 교통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과 흉측한 얼굴을 견디지 못한 탐 크루즈가 그를 행복한 상태로 재생시켜 준다는 "라이프 익스텐션" 이라는 회사와 계약을 맺어 냉동 상태가 되었다가 다시 태어나서는, 회사의 전문가들이 그의 소망에 따라 입력시켜 주는 환상의 세계를 살아간다는 거죠. 그러나 여기에 인간의 무의식이 작용합니다. 강력한 인간의 무의식을 완벽하게 제어 못하는 것이 "라이프 익스텐션" 시스템의 문제지요. 자기의 바람끼로 카메론 디아즈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이 탐 크루즈에게서 지워지지 않고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탓에 행복하던 꿈의 세계가 악몽으로 변합니다.

초반에는, 나 니콜과 헤어졌지만 페넬로페와 너무 행복해라는 탐 크루즈의 자기 과시라도 되는 듯한 사랑 영화인 것처럼 보이다가 교통 사고가 나고 나서는 한 바람둥이 미국 청년의 뒤틀린 인생 역정 얘기로 흘러가고, 막판으로 치달으면서는 "존 말코비치 되기", "매트릭스"와 음모론을 적당히 섞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제 의견을 말한다면, 글머리에 말한 바 있었던 두 가지 요소, 곧 상업적 잠재력 아니면 감독의 자신감은 그 어느 것도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오픈 유어 아이즈"에 담겨있는 유럽 영화적 철학성과 헐리웃 영화의 상업성이 엉거주춤하게 섞여 있어, 비유하자면 우리나라 재래식 변기 위에 쩔쩔 매며 서있는 백인 미국 감독 카메론 크로우(Cameron Crowe)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고나 할까요?

이 참에, 한 사건을 두고 좃선일보와 한겨레 신문이 어떻게 다르게 보도하는가를 비교하는 것처럼, "오픈 유어 아이즈"와 "바닐라 스카이"를 한번 비교해 보세요. 그 어떤, 분명한 차이를 찾으실 수 있을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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